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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AI발 구조조정 노사 갈등 커진다…노란봉투법 vs 유연해고 [AI발 지각변동]

중앙일보 여성국.오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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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AI발 구조조정 노사 갈등 커진다…노란봉투법 vs 유연해고 [AI발 지각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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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인근 MS 사옥에 걸린 현수막.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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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최대 관심사는 AI를 도입할 경우 얼마나 인원을 더 줄일 수 있는지다.”

익명을 요청한 AX(인공지능 전환) 컨설팅 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AI 도입 이면엔 고용 감소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다. 산업계 전반에 AX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내년에는 AI발(發)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내년 3월 시행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예상되는 파장은



①노조는 노란봉투법: 기존 노조법은 ‘근로조건의 결정’만을 쟁의행위 대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 단체협약의 중대한 위반 행위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사용자 고유 권한으로 쟁의 대상이 아니었던 구조조정, 직무폐지 등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면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 즉 노동계가 AI발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려 실직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단 의미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실장은 “쟁의행위 대상은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곧 단체교섭의 대상”이라며 “AI 도입에 따른 직무 폐지나 이에 따른 희망퇴직 등은 앞으로 합법적으로 파업에 나설 수 있는 쟁의 대상이고, 단체교섭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안건이 된다. 노조가 AI발 구조조정에 제동을 걸 카드를 하나 쥐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진보당 등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가 지난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 입법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진보당 등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가 지난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 입법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② 경영계는 “해고 요건 완화 요구”: 경영계도 가만히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년 연장, 주 4.5일제 요구를 받는 경영계는 그 대가로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해고를 위해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입증돼야 한다. 그간 기업들은 도산 위기 등의 상황이 아니면 정당한 해고를 법원에서 인정받기 어려워 비용을 감수하며 ‘희망퇴직’이라는 우회로를 택해왔다. 남궁준 실장은 “아직 판례는 없지만, AI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적자에 빠지거나 경영난에 처할 것이 예상된다면, 법원이 이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인정해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와 기업간 ‘빅딜’ 가능성을 거론했다. 박 교수는 “이번 정부가 노동 개혁의 주요 과제로 ‘고용 유연성’을 꾸준히 언급해왔다”며 “경영계가 정년 연장이나 주 4.5일제 등 노동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대신, 정부에 AI 전환에 따른 해고 요건 완화를 요청하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책은



전문가들은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선제적인 해법을 찾지 않으면 산업과 고용 현장이 갈등과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18일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의 ‘AI와 노동연구회’는 보고서를 통해 “자동화로 기존 직무가 대체되는 경우와 기존 숙련이 진부화되는 경우가 있다”며 “전자는 실업 급여를 통한 소득보장과 직업훈련이란 전통적 방식이 부합하겠지만, 후자는 기업 내 재교육을 통한 숙련 갱신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지순 교수는 “AI 대전환에 따른 ‘인력 리사이클 생태계’ 구축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IT와 AI 분야 고급 인력은 역설적으로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구조조정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대기업에서 나오는 인재들을 AI 전환이 시급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연결하는 정부와 기업 차원의 ‘매칭센터’를 구축해야 한다”며 “‘패배자’라는 낙인 없이 새로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게 한다면, 해고를 둘러싼 분쟁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여성국·오현우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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