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비만도 질환, GLP-1 비만치료제 공식 권고"
'행동치료→약물치료'…치료 패러다임 변화
이탈리아 등 해외선 '비만법' 움직임
국내도 '비만 예방·관리법' 발의됐지만 계류 중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당뇨병 치료제 '위고비'. /사진=로이터=뉴스1 |
세계보건기구(WHO)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약물을 성인 비만 치료제로 공식 권고하는 지침을 발표한 가운데,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제도적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선 법안을 마련하는 등 관리체계 구축에 비교적 속도를 내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관련 대책 논의가 미흡하단 지적이 나온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탈리아 상원은 지난 10월 비만을 만성적·진행성 및 재발 가능한 질환으로 공식 규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최종 승인했다. 법안 마련을 주도한 로베르토 펠라 하원의원의 이름을 따 '펠라 법'(Pella Law)으로 불리는 이 법은 비만 치료를 국가필수의료서비스(LEA) 범위에 포함해 형평성을 보장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국가 차원의 비만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국민 인식 제고와 올바른 식습관 등을 장려하고 비만율 등을 모니터링하는 추적관찰기구를 설립한단 내용도 담겼다.
비만은 전 세계 약 10억명이 앓고 있는 가장 흔한 질환이지만 하나의 병으로 인식되기보단 생활 습관 등에 따른 '개인의 문제' 영역으로 다뤄져 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 차원의 비만 관리를 체계화한 해외 사례가 보고되는 데다, WHO가 '위고비' '마운자로' 등 주요 비만 치료제가 속한 GLP-1 계열 약물을 성인 비만 치료제로 공식 권고하면서 전반적인 치료 패러다임도 바뀌는 모양새다. 특히 WHO는 그간 비만 치료 접근을 두고 약물보단 식이요법과 운동 등 행동치료를 강조해온 바 있어 이 같은 전향적 태도 변화가 더 의미 있단 해석이 나온다.
앞서 미국 하원에서도 지난 6월 비만 치료제에 대해 연방정부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의 파트D(처방 의약품 비용 급여) 보장을 금지하는 규정을 폐지하고, 메디케어 파트B(의사 진료·예방 검진 등 서비스 보장)의 집중적 행동치료(IBT) 접근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비만 치료·감소법'(TROA)이 발의된 바 있다. 이외에도 포르투갈은 2023년 국가보건서비스에 비만 예방·치료를 위한 통합의료 모델을 도입했고, 독일은 2020년 국가 당뇨병 전략의 일환으로 비만을 의학적·사회적 질병으로 인정하며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비만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
국내 역시 지난 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이 '비만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엔 '보건복지부장관은 국가비만관리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하며 복지부 장관 소속의 비만관리위원회를 둔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종합계획엔 비만 질환 예방·진료·치료·연구 등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 양성과 소아·청소년 등 생애주기별 비만 예방·관리 사항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도 명시됐다.
서영성 대한비만학회장(계명대 동산병원 비만대사수술센터장)은 "과거 미용적 측면으로 봤을 때와 비교하면 현재 비만은 차원이 다른 질환이 됐다"며 "비만으로 당뇨병·뇌졸중·심근경색 등이 동반되면 노동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지금보다 더 구조적 관점에서 비만 치료에 접근해야 한다. 비만법 제정을 비롯해 건강보험 지원 범위를 넓히는 등 관리체계 수준을 높인다면 전반적인 의료비 절감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용희 대한비만학회 소아청소년위원회 이사(순천향대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유전성 대사질환이나 1형 당뇨병 등과 달리 비만은 영양상담조차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진료 과정에서도 어려운 점이 많다"며 "해외에선 이미 비만을 개인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 질환으로 바라보고 있는 만큼 국내도 소아·청소년부터 체계화된 비만 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효진 기자 hyos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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