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코노믹리뷰 언론사 이미지

"저 신사분, 애니 즐기는 분이셔" 애들이나 보던 것은 어떻게 메인이 됐나 [IT큐레이션]

이코노믹리뷰
원문보기

"저 신사분, 애니 즐기는 분이셔" 애들이나 보던 것은 어떻게 메인이 됐나 [IT큐레이션]

속보
홍명보호, 월드컵서 멕시코·남아공·유럽PO 진출팀과 격돌
[최진홍 기자] "저 신사분, 애니 즐겨보는 분이셔" 중후한 클래식이 흐르는 고풍스러운 사교 클럽.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유로운 지성인이 에디오피아 커피를 마시며 애니를 즐기고 있다. 아이들만 보는 것이라고? 오, 천만에.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당신의 심장을 바치며 모든 것을 불태울만한 열정을 외면하다니. 이제 애니는 메인이며 핵심이다. 콘텐츠의 왕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콘텐츠 시장의 지각변동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의 지각판이 흔들리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가 주름잡던 안방극장과 스크린의 왕좌를 애니메이션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극장, OTT, 방송을 막론하고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비주류 서브컬처가 아닌, 시장을 견인하는 핵심 엔진으로 부상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가 감지된 곳은 역시 극장가다. 당장 팬데믹 이후 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극장가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2D 캐릭터들이었다.

지난 3월, 95만 관객을 동원하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 <진격의 거인 극장판: 더 라스트 어택>이 신호탄이었다. 땅울임을 막으려는 처절한 조사병단의 분투가 에렌의 슬픈 죽음과 함께 미카사의 칼날 아래서 빛났다. 극장가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 열기는 여름을 맞아 본격적으로 폭발했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이 누적 관객 566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스코어를 기록하며 2025년 국내 박스오피스 전체 1위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일본 콘텐츠가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국내 연간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한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19금이라 볼 수 없었던 초등학생 아이들이 부모와의 극장 동행까지 끌어내며 판은 더욱 커졌다. 극장판은 15세며 부모와 동행하면 시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한성으로 향하는 팬들과 그 팬들의 부모들은 하쿠지의 슬픈 사랑에 눈물을 흘리며 별안갑 갑자기 렌고쿠를 그리워하는 대화합의 장을 끌어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체인소맨: 레제>가 300만 고지를 넘으며 폭탄의 악마가 제대로 극장가에서 터졌다. 또 11월에는 디즈니의 <주토피아2>가 개봉 5일 만에 210만 관객을 쓸어 담으며 '애니메이션 불패 신화'에 쐐기를 박았다.

안방극장의 풍경도 달라졌다. 넷플릭스가 지난 6월 공개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넷플릭스 역대 오리지널 중 최다 조회수를 갈아치웠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OST, 굿즈, 관광 상품 등으로 파생되며 2025년 최고의 '효자 IP'로 등극했다. 한국 최초 핵잠수함 이름을 헌트릭스로 지어야 한다는 드립까지 난무할 정도다.


이러한 흐름은 TV 채널 시청률 지형도마저 바꿨다. 1535세대를 주 타깃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애니플러스'는 올해 개국 이래 처음으로 유료방송 애니/키즈 부문 시청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IPTV 내 시청 점유율은 무려 15.6%에 달한다. 계열사인 애니맥스의 점유율까지 합치면 27%라는 압도적인 수치가 나온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어른들이 리모컨을 쥐고 애니메이션 채널을 고정했다는 뜻이다.


확장성과 생명성
그렇다면 왜 지금, 애니메이션인가? 업계에서는 '확장성'과 '생명력'을 꼽는다.


과거 애니메이션은 아동용이라는 인식 탓에 시장은 키즈 콘텐츠 위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른바 '귀주톱(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체인소맨)'으로 불리는 하드코어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2030세대의 팬덤을 결집시켰고 이것이 3040세대까지 확장되면서 소비층이 두터워졌다.

여기에 디즈니의 대중성이 더해지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류 장르'로 격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아가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보다 배우의 리스크나 시대적 유행에 덜 민감해 IP(지식재산권)의 수명이 길다. 한번 형성된 충성 팬덤은 굿즈, 테마파크 등 부가 사업으로의 확장을 용이하게 만든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애니메이션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불과 몇 년 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했던 시선들은 이제 자취를 감췄다. 2025년은 애니메이션이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확실한 '메인 스트림'임을 선포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 뜨거운 열기가 2026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업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저작권자 Copyright ⓒ ER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