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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12월3일 밤 저를 태우고 국회로 달려준 택시운전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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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12월3일 밤 저를 태우고 국회로 달려준 택시운전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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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유튜브채널 한겨레티브이(TV) ‘뷰리핑’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유튜브채널 한겨레티브이(TV) ‘뷰리핑’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저를 국회로 들여보내 준 택시운전사님을 찾고 싶은데….”



12·3 불법계엄이 있기 4개월 전 가장 먼저 친위쿠데타의 위험을 알린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유튜브채널 한겨레티브이(TV) ‘뷰리핑’에 출연해 지난해 12월3일 계엄이 선포된 당일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당시 자신을 태우고 국회로 향했던 60대 택시운전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 분도 저처럼 70년대 유신독재와 79년 12·12 쿠데타를 경험하고 80년 5월 광주를 경험한 분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경기 남양주부터 달려서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한 뒤에도 떠나시지 않더라고요. 경찰이 봉쇄한 국회로 들어갈 방법을 함께 찾아준 겁니다.”










김 의원이 길어 올린 그 날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했다.



“계엄이 선포됐습니다. 체포조가 있을 수 있으니 집에서 빨리 나와 국회로 오셔서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합니다.”



김 의원이 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택시를 불렀다. 의원전용 차량이 준비되기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었고, 그게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3분이나 걸렸을까. 집 앞 택시가 도착했다. 하지만 택시운전사를 만나러 먼저 나간 건 김 의원이 아닌 김 의원 아들이었다.



“계엄을 제일 먼저 예견했고, 국회의원 40명만 체포해 본회의장에 가지 못하게 하면 계엄해제가 불가능하게 되니 체포조가 이미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밖을 보는데, 아들이 먼저 나서더라고요. 딸도 ‘아빠 내가 같이 가줄게’라며 옷을 챙겨 입고 나서길래 ‘괜찮다’고 하긴 했는데…, 울컥하더라고요.”



택시에서도 김 의원은 쉴 새가 없었다. 그는 4성 장군으로 군에서 경험했던 계엄(훈련) 로드맵을 되짚었다. 긴장해선지 손이 떨려 제대로 타이핑을 하기 어려웠다. 택시운전사가 눈치를 챘는지 “폰에 말을 하면 문자를 보낼 수 있다”고 알려줬다. 우선 “우리가 계엄해제를 할 수 있다는 걸 알렸”다. 우왕좌왕하던 채팅방 분위기가 정돈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 이동, 투입…, 국회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나는 대로 국회의원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병력이 들어올 테니 보좌진도 전부 국회 본회의장 근처로 모여야 한다”는 내용도 보탰다. 그때 경찰이 국회를 에워싸고 국회의원 출입을 막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의원은 다급해졌다. “의원들은 포고령 위반으로 현장 체포될 수 있으니 계엄군과 몸싸움은 피하고 신속히 국회로 진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올렸다. 김 의원이 택시운전사의 한숨을 느낀 것도 그때다.



“저만 들어가면, 국회의원들만 들어가면 괜찮습니다. 계엄을 우리가 막을 수 있습니다.”



거듭 운전사에게 “국회의원들이 계엄을 막을 수 있다”며 안심시켰다. 그 사이 국회에 도착했다. 경찰이 국회 전체를 에워싼 뒤라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경비가 삼엄했다. 택시 운전사는 김 의원을 내려주는 대신 국회를 돌기 시작했다.



“경계가 허술한 곳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어요. 정문 쪽은 이미 몇겹으로 막고 있더라고요. 후문 쪽도 10m 정도 간격으로 경찰들이 배치돼 있어서 들어가기 쉽지 않겠다 싶었죠.”



그때였다. 국회 도서관 쪽문으로 누군가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그곳을 통해 들어가기로 했다. 깜깜해서 담 너머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김 의원이 내리고도 떠나지 않던 택시 운전사와 눈이 마주쳤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국회의원 잡아가겠다는 체포조가 있을 거 같은데요. 그래도 들어가렵니다. 혹시 제가 들어가서 붙잡히면 크게 소리를 지를 테니 그때 저쪽 시민들에게 알려서 도와주세요.”



다급한 부탁에 택시운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 날인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계엄해제 등을 외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비상계엄이 선포된 다음 날인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계엄해제 등을 외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그게 그분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운 좋게도 별 탈 없이 국회 도서관을 지나 국회 본청으로 들어섰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 특임부대와 특전사령부 요원들이 국회로 출동한 것도 그즈음이다. 김 의원은 “특전사와 특임대가 어떤 훈련을 해왔는지 잘 아는 전직 군인이다. 아마 국회에 있던 의원 중 내가 가장 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출동한 특수부대들이 ‘성실히’ 임무를 수행한다면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100여명에 가까운 의원들을 몇 분 안에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 의원은 “전기를 끊은 다음 국회 본회의장 같은 공간에 최루탄 10여개만 터뜨려도 사람이 버티기 어렵다. 나오는 대로 체포해서 데려가면 계엄 해제 결의는 무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사이 계엄해제 요건인 국회의원 150명이 훌쩍 넘어섰다. 김 의원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계엄 해제 표결을 해야 한다”고 거듭 외쳤다.



당시 우 의장은 “의안 과에 안건이 접수되지 않았다”고 말을 되풀이했다. “원망스러웠”다. 의원들은 군이 단전했을 때를 대비해 거수로 표결하자고 약속했다. 그것도 안 된다면 백지에 이름을 써서라도 표결하자면서 각자 앞에 놓인 종이에 이름을 써넣기 시작했다.



“이미 특전사 요원들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진입을 시작한 상황이라 의장님이 너무 답답해보이고, 또 야속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때일수록 나중에 흠결이 없도록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의장님이 옳았어요. 지금 윤석열이나 김용현이 하는 걸 보면 그때 그 흠을 잡아 계엄 해제 표결이 무효라고 주장하고도 남았죠.”



그리고 새벽 1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살았다. 결정적인 분수령이었”다.



‘그는 무사히 돌아갔을까.’



그제야 그는 택시운전사를 떠올렸다. 그 뒤 1년, 그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2024년 1년 전 그 날을 복기한다. 그 날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이지 않았다면, 그래서 군도 경찰도 의원들을 쉽게 체포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 날 그 택시운전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 쪽문을 찾지 못했다면….



김 의원은 그 날 밤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더 “그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채 해병 특검,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에서의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부분을 중심으로 한 종합특검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채 해병 특검의 임성근 구명 로비, 내란 특검의 사법부 개입 의혹, 김건희 특검의 다수 의혹 등을 생각하면 진상규명은 아직 멀었”다. 그는 “종합특검없이 경찰, 군 등에서 수사를 이어가면 수사 대상인 방첩사령부가 방첩사 인원을 수사하는 셀프 수사를 하게 된다”며 “방첩사는 이번에 사령부 이름만 바꿀 게 아니라 아예 사령부를 해체하고 정보(수집) 기능은 합참 정보본부나 정보사령부로,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넘긴 다음 방첩 업무만 남겨서 국, 실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4년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2024년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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