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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관중 1,000만 시대…KBSA "여자 야구 활성화, 지금이 골든타임"

스포티비뉴스 배정호 기자, 정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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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야구 관중 1,000만 시대…KBSA "여자 야구 활성화, 지금이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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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고양, 정형근, 배정호 기자] 한국 야구는 관중 수만 놓고 보면 절정기에 있다. KBO리그는 2년 연속 1000만 관중을 돌파했고, 그 중심에는 젊은 여성 팬들이 있다. SNS, 콘텐츠, 방송 예능까지 결합된 야구 문화는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관중석의 열기와 달리, 여자 선수가 실제로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좁다. 초등·리틀 단계에서 야구를 시작한 소녀들은 고교에 진학하는 순간 팀이 없어 그라운드를 떠난다. 소프트볼과 베이스볼5 역시 저변 부족과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이 병목을 풀기 위해 지난달 26일 경기도 고양시 NH인재원에서 한국리틀야구연맹, 한국여자야구연맹, 한국티볼연맹, 한국연식야구연맹과 ‘유소년 여자 선수 저변 확대 및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종목의 울타리 때문에 유망주가 사라지는 악순환을 끊고,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협약식의 중심에는 양해영 KBSA 회장이 있었다. 그의 발언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소프트볼 따로, 여자야구 따로 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저변이 부족한 상황에서 분리되면 모두 더 어려워집니다.”



◆종목 장벽 허무는 ‘교차 등록’…여자야구–소프트볼 한 선수풀로

한국 여자야구의 가장 큰 문제는 유소년 선수 풀이 너무 얇다는 점이다. 올해 기준으로 U-12~U-18 연령대 야구 종목에 등록된 여자 선수는 71명, 소프트볼은 140명, 베이스볼5는 41명뿐이다. 여자야구연맹(43명)과 리틀야구연맹(20명)을 합해도 315명에 불과하다.


초등·리틀 단계에서 야구를 시작해도, 중·고등학교에 여자야구팀이 없어 엘리트 선수로 전환되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일부 선수들은 사회인야구에서 야구를 처음 접한 뒤 국가대표까지 오르는 이례적인 구조도 만들어졌다.

얇은 선수층은 국제무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양 회장은 “여자야구는 아시아 3~4위, 소프트볼은 4위 수준”이라며 “초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한 선수가 없기 때문에, 상위권과의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교차 등록 제도’이다. 지금까지 여자 야구 시스템에서는 선수가 자신이 등록한 종목에만 출전할 수 있었다. 야구 등록 선수는 야구만, 소프트볼 등록 선수는 소프트볼만 뛰는 구조였다. 이 장벽은 유망주가 종목 간 이동을 통해 진로를 설계할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양 회장은 “지금까지 소프트볼 따로, 여자야구 따로 움직이다 보니 각 종목 모두 저변이 얇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며 “이제는 종목 간 벽을 허물고자 한다. 여자야구 선수도 원한다면 소프트볼 대회에 뛰고, 소프트볼 선수도 여자야구 대회에도 출전하도록 문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베이스볼5, 유스올림픽 정식종목…“손 안의 야구가 전략적 자산”

이번 협약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베이스볼5를 저변 확대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베이스볼5는 배트와 글러브 없는 5인제 야구다.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해 ‘도시형 야구’로 불린다.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는 베이스볼5를 전 세계 보급종목으로 밀고 있다. 베이스볼5는 이미 2026 다카르 유스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2032 브리즈번 올림픽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 양 회장은 “야구는 미국·한국·일본·대만 정도가 중심이고, 소프트볼은 전 세계에서 하고 있다. 베이스볼5도 WBSC에 가입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종목”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태국에서 열린 WBSC 총회에서는 북한이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북한은 야구·소프트볼이 아닌 베이스볼5 종목부터 국제 대회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북이 처음으로 정식으로 경쟁하는 야구 종목은 베이스볼5가 될 수 있다. 양 회장은 “베이스볼5는 남녀가 함께할 수 있고, 장비 부담도 적다”며 “여자 선수 저변 확대와 남북 스포츠 교류 측면 모두에서 전략성이 큰 종목”이라고 말했다.

KBSA는 내년부터 전국 베이스볼5 대회를 열고, 종목 보급을 위해 교육부·전국 시·도 교육청, 학교체육진흥회와 연계해 전국학교스포츠클럽 편입, 교사 연수 프로그램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 티볼·연식야구·학교체육까지…입문 루트 재설계

여자야구·소프트볼·베이스볼5 저변 확대의 또 하나의 축은 티볼과 연식야구, 학교체육이다. 티볼은 공을 고정된 스탠드 위에 올려놓고 치는 방식으로, 초등학생도 안전하게 타격과 수비 동작을 익힐 수 있다. 연식 야구는 부드러운 공을 쓰는 경기로, 부상 위험을 줄이면서 경기 경험을 쌓을 수 있다. 한국티볼연맹에 등록된 U12~U18 여자 선수는 무려 1,517명에 달한다.

양 회장은 KBO 재직 시절부터 티볼·리틀야구 보급에 공을 들인 인물이다. 그는 “여자야구가 더 발전하려면 어릴 때부터 학교 안에서 야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티볼연식야구연맹과 협업해 학교 팀을 만들고, 여기서 성장한 선수들이 소프트볼·야구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협약식에서는 티볼·연식야구 대회에 여자야구·소프트볼 관계자가 직접 참여해 홍보·진로 상담을 병행하는 방식도 논의했다. “야구하고 싶다”는 여학생이 실제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겠다는 취지이다. 각 협회들은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세부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공통 사업을 분담하기로 했다.




◆ “프로야구가 과실을 가져갔다면, 저변에도 투자해야”

여자야구·소프트볼·베이스볼5 저변 확대는 결국 예산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양 회장은 정부와 KBO, 프로야구 구단의 역할을 분명하게 짚었다.

“프로야구가 인기와 수익, 스폰서십도 대부분 가져가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야구 저변 확대에 재투자돼야 한다. 야구 발전은 남자야구만의 일이 아니다. 여자야구, 소프트볼, 베이스볼5까지 전체 생태계가 함께 커져야 진짜 야구 강국이 된다.”

현재 아마야구는 비인기 종목이라 스폰서 유치와 중계, 노출에서 항상 불리하다. 협회와 각 연맹이 자립해 저변을 확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이다. 관심과 자원이 프로야구에 편중된 만큼, 하위 생태계는 자연 증가하지 않는다.

양 회장은 “고교 드래프트에서 몇 명이 프로에 뽑히고, 또 몇 명 방출하는 방식만으로는 미래가 없다”며 “프로야구계와 정부는 여자야구·소프트볼·베이스볼5를 ‘우리와 무관한 영역’으로 보지 말고, 야구 산업 전체를 위한 투자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협약은 단순히 각 종목을 살리는 선택이 아니다. 여자야구·소프트볼·베이스볼5를 하나의 유소년 선수 풀로 묶고, 다양한 종목 경험을 통해 끝까지 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하는 첫 단계다. 한국 야구가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할 것은 ‘여자 관중 수’가 아니라, 여자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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