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주택에서 흉기를 휘둘러 30대 의붓딸을 살해한 50대 계부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사진은 기사 내용을 토대로 AI(인공지능)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사진=구글 나노바나나 |
2021년 12월 2일, 전북 전주.
이혼한 전처의 집에 들른 50대 남성 A씨가 말다툼 끝에 30대 의붓딸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단 한마디 '말'이었다. A씨는 분노를 참지 못했고, 평범한 가정은 돌이킬 수 없는 참극으로 무너졌다.
택시기사로 일하던 58세(사건 당시) 남성 A씨는 두 번째 부인 B씨와의 이혼 소송에서 패소했다. A씨는 아내 B씨와 2012년 재혼 후 7년간 함께 살았지만 불화가 계속됐고 2019년부터 별거를 하고 있었다. 이혼 소송으로 지쳐있는 A씨에게 불운이 겹쳤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B씨와 공동명의로 갖고 있던 집도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A씨는 "이제 인생이 끝났다"는 말만 반복하며 자포자기 상태였다.
사건 당일은 A씨가 자신의 짐을 가지러 B씨가 살던 집으로 찾아간 날이었다. 2021년 8월 7일 오전 10시45분. 이혼 소송이 마무리 되고 B씨의 집에선 이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B씨의 딸 C씨(사건 당시 33세)는 어머니 집에서 가전제품을 챙기러 왔다가 A씨와 마주쳤다. 잠시 방충망을 여닫는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고 C씨는 A씨에게 "이제 당신은 빈손으로 나가야지. 찌질하게 굴지 마"라고 말했다.
이 말 한마디가 불씨가 됐다. A씨는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C씨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수차례 칼을 휘둘렀다. C씨는 결국 쓰러졌다. 이를 지켜보던 A씨는 아무런 구호 조치도 하지 않았다. 당시 집 밖에서 B씨가 짐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이를 알지 못했다. C씨에겐 두 명의 자녀가 있었다.
뒤늦게 119에 신고를 했지만 이미 골든타임은 지났다. 119구급대가 도착했지만 C씨는 저혈량성 쇼크로 숨을 거뒀다.
2021년 12월 2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주택에서 흉기를 휘둘러 30대 의붓딸을 살해한 50대 계부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사진은 사건 현장에 출입을 금지하는 폴리스라인이 설치 된 모습./사진=뉴스1 |
경찰이 출동했다. A씨는 범행을 뉘우치지 않고 스스로 문을 잠그고 경찰과 2시간 가량 대치했다. 그는 체포 직전 "나도 죽겠다"며 자해를 시도해 응급수술을 받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 A씨는 "딸이 평소 나를 무시했다.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사 결과 A씨는 이미 20여 년 전에도 흉기를 휘두른 전력이 있었다. 1998년 전처에게 "같이 죽자"며 흉기를 휘둘러 상해 혐의로 처벌받았다. A씨는 그때도 술과 분노에 취해 있었다. 당시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23년 뒤 같은 일이 반복됐다.
교통사고로 실직 위기에 놓이고, 이혼과 경제난이 겹치면서 A씨는 다시 폭력적인 모습으로 돌아갔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그는 "삶이 너무 힘들었다. 딸이 내 처지를 비웃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1심에서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제적 곤란과 이혼의 분노를 아무런 잘못 없는 피해자에게 돌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피해자를 살해하고, 극단적 시도까지 했다. 피해자가 피를 흘리며 현관으로 향할 때조차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고, 피해자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항소심 결과도 같았다. 2022년 4월 20일 광주고법 전주재판부는 "피고인이 우발적이라 주장하지만 범행은 잔혹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어머니는 지금도 심리 치료를 받고 있고, 두 어린 손녀는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원심의 형이 무겁지 않다"고 판시했다.
A씨는 여전히 수감 중이다.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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