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배우 유동근 “당신이 걸어온 길 그대로 우리도 가겠습니다” [인터뷰]

헤럴드경제 고승희
원문보기

배우 유동근 “당신이 걸어온 길 그대로 우리도 가겠습니다” [인터뷰]

속보
김재환, SSG와 2년 최대 22억원에 계약
25일 별세한 국민배우 이순재 추모
드라마서 두 번이나 부자(父子) 관계
“존재만으로 귀감과 모범, 존경하는 선배”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배우 이순재 빈소에 금관문화훈장이 놓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배우 이순재 빈소에 금관문화훈장이 놓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당신이 걸어온 길 그대로 롤모델 삼아, 우리도 걸어가겠습니다. 선배님, 정말 멋졌습니다. 멋진 배우,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배우 유동근은 지난 25일 별세한 선배 이순재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존재만으로 귀감과 모범이 돼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존경하는 선배였다”며 헤럴드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고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연기 인생’ 69년을 살아온 배우 이순재가 25일 새벽 별세, 대중문화계는 참스승을 잃은 슬픔에 담겨있다.

유동근은 “워낙 건강하셔서 이렇게 떠나실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어제 아침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날, 빈소를 찾은 유동근은 오랜 시간 머무르며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

시대를 호령해 온 두 대배우의 인연이 각별하다. 유동근과 고인은 수많은 작품을 통해 호흡을 맞췄다. 특히 드라마 2000년 ‘은사시나무’(2000)와 ‘무자식 상팔자’(2012~2013)에선 부자(父子) 관계로 만났다.

그는 “선배님은 워낙 지적인 배우셨다. 현장에서 만나면 늘 연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꽃이 피곤 했다”며 “한국 방송 연기를 정착시킨 분이지만, 함께 하는 자리에선 셰익스피어, 안톤 체홉을 꺼내며 연극론에 눈을 빛내셨던 기억이 선하다. 그 시절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배우는 선배님뿐이었다”고 했다.


25일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온 배우 이순재가 별세했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내 시청자광장에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KBS는 누구나 와서 추모의 뜻을 밝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

25일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해온 배우 이순재가 별세했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내 시청자광장에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KBS는 누구나 와서 추모의 뜻을 밝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소위 ‘명문대 인텔리’로 불린 고인은 고교시절 충남여고 에술제에서 본 연극 공연을 보고 배우를 꿈꾸게 됐다. 배우로 선 첫 작품도 연극이었으나 TBC의 개국과 함께 방송을 통해 대중과 더 가까워졌다. 말년엔 다시 무대로 돌아와 제한된 캐릭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기혼을 불태웠다. 고인이 자주 언급했다는 셰익스피어와 체홉은 고인의 연극 인생에도 각별했던 두 작가다.

2023년 셰익스피어 ‘리어왕’ 무대에서 장장 3시간 20분의 러닝타임 동안 이어지는 방대한 대사를 한 자 한 자 곱씹어 연기하며 연극계에 하나의 이정표를 남겼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특별무대에서 ‘노왕의 절규’를 재연했을 때,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그런가 하면 체홉의 ‘갈매기’는 고인의 ‘연출 버킷리스트’였다. 그 꿈은 2022~2023년에 이뤘다.

유동근은 “하나의 배역, 작품에 대한 연구를 그토록 깊이있게 하고, 그러한 자세가 매작품 70년 동안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작품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해독하며, 작품에 임하는 자세는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았다”고 했다.


방송, 영화, 무대를 넘나든 고인은 빽빽한 스케줄에도 후배들의 작품도 빼놓지 않고 모니터하고, 공연에도 잊지 않고 찾았다고 한다. 유동근은 “워낙 후배 사랑이 극진해서 후배들이 하는 작품마다 빼놓지 않고 보고, 공연장에도 가서 응원해줬다”며 “후배들의 연기는 물론 연기를 하는 환경에 대해서도 각별히 살펴줬고, 늘 소외된 연기자들의 권익을 먼저 생각해 무슨 일이든 먼저 지원해 주셨던 분”이라고 했다.

유동근  [신시컴퍼니 제공]

유동근 [신시컴퍼니 제공]



고인이 1971년 동료들과 함께 한국방송연기자협회를 설립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인은 1980년대까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을 세 차례 역임했다. 그 뒤를 유동근이 이어 지난 2016년에 23대 이사장으로 오르기도 했다.

유동근은 “이사장에 오르고 선배님께서 주축이 되신 협회 설립 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치매를 소재로 한 연극 ‘사랑해요 당신’을 올렸다”며 “선배님이 직접 무대에 오른 이 연극이 굉장히 잘됐다. 어제 빈소에 있으면서 그때 선배님께서 해오신 일을 기념할 수 있는 연극을 올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르게 찾아온 이별의 시간은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유동근은 “지금과는 너무도 달랐던 제작환경이었기에 늘 선배들을 모시며 가르침을 받고 선배, 동료에게 인정받아야 연기를 할 수 있어 지금도 (별세 소식이) 마음이 아프다”며 “후배들과 운동도 하고 식사도 종종 했는데 건강이 악화된 이후엔 만남이 수월하진 않았다”며 애통해했다.

유동근은 또 고인에 대해 ‘학구적인 배우’로 연기와 작품 얘기로는 입이 닳도록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선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이야기를 들어준 어른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놓으며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대신 그저 몸소 보여주셨고, 담담하고 묵직하게 ‘괜찮다’, ‘힘들지’, ‘잘했다’고 말해주셨다”며 “그 담백한 한마디의 울림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정말 멋진 선배였다”고 돌아봤다.

지난 25일 세상을 떠난 고인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 장지는 이천 에덴낙원이다.

국민배우인 고인을 기리기 위해 KBS 본관과 별관에도 별도의 추모 장소가 마련, 일반인도 조문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