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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반군과 정부 공모 언론보도에 좌파 콜롬비아 대통령 발끈

중앙일보 이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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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반군과 정부 공모 언론보도에 좌파 콜롬비아 대통령 발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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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서 군·정보기관 고위 간부들이 반군 조직과 기밀을 주고받았다는 폭로를 놓고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이라고 맞받아쳤다. 정권을 흔들 스캔들 배후엔 미국의 음모가 담겼다면서 반미 정서를 자극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 광장에서 친 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석해 군중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이유로 미국 비자가 취소돼 귀국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지난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 광장에서 친 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석해 군중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이유로 미국 비자가 취소돼 귀국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태의 발단은 콜롬비아 방송 카라콜의 보도였다. 카라콜에 따르면 지난해 반군 지휘관 칼라르카 체포 과정에서 확보된 그의 노트북과 휴대전화에는 육군 인사국장, 국가정보국(DNI) 고위 간부 등과 주고 받은 이메일과 메신저 대화가 담겨있었다.

카라콜은 “해당 대화에서 부대 이동 계획, 무기 밀매와 자금 세탁 수법, 반군 조직이 운영하는 위장 경비회사 설립 방안 등이 논의됐다”고 전했다. 칼라르카 측이 꾸준히 마약 거래에 관여했다는 정황도 포착됐고 반군의 무기 거래를 돕는 중국인 사업가를 콜롬비아에 초청하는 방안도 언급됐다고 한다.

보도 후 콜롬비아 군과 정보기관은 진상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동시에 야권은 “정부 핵심부까지 마약 카르텔과 게릴라가 파고든 초대형 스캔들”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페트로 정권으로선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셈이다.

페트로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엑스(X)에 글을 올리며 적극 반박에 나섰다. 그는 “CIA가 만든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보도”라며 “미국 정보기관이 배후에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CIA는 자국 정부의 이해에 맞게 여론 형성을 하려고 이런 식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습관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CIA가 입맛에 맞는 가짜정보를 의도적으로 수집해 언론에 흘렸다는 취지다.

콜롬비아 국내 스캔들에 미국이 등장한 건 최근 급격히 악화한 대미 관계와 무관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월 콜롬비아를 마약 공급 국가로 지목한 뒤 “마약 카르텔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페트로 대통령과 가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에 페트로 대통령도 강경책으로 맞섰다. 미국산 무기 구매를 중단하고 주미 대사를 불러들였다. 또 마약 운반이 의심되는 선박을 향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 명령을 내린 데 “국제 수역에서 벌어지는 살해 작전”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콜롬비아 내에선 대통령이 ‘CIA 공작’이라는 거대한 음모론으로 사건의 초점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군과 정보기관이 반군 또는 마약 조직과 유착했다는 의혹은 수시로 제기돼왔던 데다,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미 정보기관을 겨냥한 게 부적절하다는 점에서다. 중도 성향의 한 야권 지도자는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에 “그것은 순수한 부패이고 국가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려는 음모”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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