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NC 다이노스 감독이 지난달 4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해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은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NC 다이노스 제공 |
“1루에서 몸으로 막는 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불룩한) 배가 글러브다. 날아오는 공을 못 잡겠느냐.”
2015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NC 다이노스 소속이었던 이호준이 한 말이다. 당시 이호준은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했으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김경문 NC 감독이 1루수 활용도 고려했던 상황이었다. 1루수로서의 오랜 공백과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때문에 수비가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제기됐는데, 이를 유쾌하게 받아친 것이다.
이호준은 팀 연습 경기 때 후배 투수에게 이런 조언을 하기도 했다. “공 던질 때 정경배 형의 얼굴을 보면 안된다. 웃겨서 절대 스크라이크를 못 던진다.” 이호준 NC 다이노스 감독의 입담은 현역 시절이나 지금이나 리그 최고 수준이다. 이런 입담은 그가 현역 시절 뛰었던 SK 와이번스의 독특한 분위기와도 관련이 깊다.
현역 시절 유쾌한 농담으로 최고 입담 뽐낸 이호준
2001년 12월 필자는 인천 연고 SK 와이번스에 입사했다. 당시 구단 사무실은 인천 구월동에 있었다. 인천지하철 예술회관역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길은 황량했다. 1985년 인천광역시 청사가 구월동으로 이전한 뒤 이 일대를 중심으로 상권 개발이 시작됐고, 새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곳곳에 펼쳐진 공사 현장은 한동안 삭막함을 지울 수 없었다. SK가 인천 야구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지만 팀의 기반과 분위기가 아직 자리잡지 못했던 당시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1999년까지 인천을 연고로 했던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이전하면서 인천은 한순간에 ‘버려진 야구 도시’가 됐다. 2000년 창단한 SK가 인천에 입성했는데 팀의 기반은 1999시즌을 끝으로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이었다. 인천 야구팬들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옛 인천팀을 따라 현대를 응원하는 팬, 새 인천팀 SK를 받아들이는 팬, 그리고 실망감에 야구 자체를 끊어버린 팬들이 있었다.
2007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한 SK 와이번스 이호준이 미소짓고 있다. 그는 유쾌한 농담으로 선수단 분위기를 띄웠던 선수였다. 연합뉴스 |
2002년 3만 석 규모의 인천 문학야구장이 문을 열었지만 관중석은 한동안 썰렁했다. 텅 빈 관중석을 바라보는 SK 선수단과 프런트 직원들은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시기에 필자는 SK에서 언론홍보 업무를 맡고 있었다. 이전 직장인 LG 트윈스에서도 3년 동안 같은 일을 했는데, 두 구단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서울 연고팀인 LG가 ‘도시적’이라면, 쌍방울 출신 선수들이 중심이었던 SK는 ‘순박한’ 기운이 강했다.
무엇보다 SK 선수들은 언론 취재 협조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쌍방울 시절부터 기자들과의 관계가 좋았던 김기태·최태원·조원우·김원형 등 고참 선수들이 먼저 분위기를 만들다 보니 젊은 후배들도 자연스레 언론에 친화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기자들이 특히 좋아했던 ‘입담 3총사’가 있었다. 이호준(현 NC 다이노스 감독), 이진영(현 두산 베어스 코치), 제춘모(현 KT 위즈 코치). 셋의 재치 있는 말솜씨는 지금 돌이켜봐도 웃음이 나온다. 그 가운데서도 맏형 이호준은 단연 최고였다. 때문에 당시만 해도 많은 이들이 “이호준은 은퇴하면 해설자로서 대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마이크보다 ‘현장’을 선택했다. 선수 은퇴 후 코치 경력을 차근차근 밟으며 지도자로 성장했고, 마침내 올해 NC 다이노스에서 감독으로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입담 3총사'의 동생격인 이진영과 제춘모도 방송에 눈길을 주지 않고 코치로서 야구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투수로 해태 입단했으나 빛 못봐...SK 이적 후 '중심 타자' 성장
필자는 이 감독과 2002~2012년 11년 동안 같은 팀(SK)에 있었다. 그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연고팀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원래는 투수였다. 그러나 투수로는 빛을 보지 못해 타자로 전향했다. '투수 이호준'의 1군 기록은 입단 첫해인 1994년 8경기 평균자책점 10.22가 전부다. 투수로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 해 신인 타자로 명성을 날린 김재현(LG 트윈스)의 ‘20(홈런)-20(도루) 클럽’을 만들어주는 20번째 홈런을 맞은 장면이었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 이호준. 그는 투수로 입단했지만 곧바로 타자로 전향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이호준은 타자 전향 후에도 해태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런 그가 SK로 트레이드되면서 야구 인생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SK에서 그는 중심타자로 성장했고, '4번타자 이호준'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호준은 2007시즌 종료 후 첫 FA 자격을 얻어 SK와 4년 총액 34억 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FA 계약 기간 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내며 팬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2시즌이 끝나 두 번째 FA가 되었을 때 SK 내부에서는 “그를 데려갈 팀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나이가 37세가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데려갈 팀 없을 것" 평가 뒤집고 37세에 NC 다이노스로 FA 이적
그러나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전격적으로 이호준을 품었다. 당시 필자에게 이 소식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SK 유니폼을 입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SK에서 그는 2008년, 2011년 두 차례 주장을 맡으며 선수단의 중심 역할을 했다. 농담을 잘해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후배들이 어려워할 만큼 묵직한 존재감을 갖춘 리더였다. 그런 리더가 팀을 떠나자 프런트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허전함과 상실감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선택은 그의 야구 인생에 또 한 번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NC가 2013시즌부터 KBO리그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시기, 이호준은 단순한 FA 보강 차원이 아니라 ‘팀의 뼈대’를 만드는 핵심이 됐다.
2013년 9월 15일 LG 트윈스전에서 9회 2타점 적시타를 터뜨린 이호준(왼쪽)이 전준호 코치와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그는 주장으로 팀의 뼈대를 만들었다. 연합뉴스 |
그는 2013~2014년 두 시즌 동안 NC의 주장을 맡았고, '전력질주 격려, 불만 제로'라는 팀 문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선수단과 관련해 부정적인 얘기를 절대 하지 말자”는 원칙을 강조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이 모습은 자연스럽게 필자에게 SK 와이번스 초창기 김기태(전 KIA 타이거즈 감독)를 떠올리게 했다.
김기태는 쌍방울을 대표하는 선수였으나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를 거쳐 SK로 이적해 왔다. 그는 SK 초창기에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규율이 확실한 선수단 문화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었다. 이호준은 SK에서 김기태의 리더십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그 문화를 NC에서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
신생팀 NC의 정체성 만든 '호부지'
NC에서 그는 2013~2017년 다섯 시즌 동안 무려 네 차례나 2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당시 NC는 ‘나테이박’(나성범–테임즈–이호준–박석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강력한 중심 타선을 자랑했는데, 그 중심에 이호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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