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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이순재 91세로 별세…“연기 열정의 화신, 4시간 인터뷰 한 적도”

헤럴드경제 서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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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이순재 91세로 별세…“연기 열정의 화신, 4시간 인터뷰 한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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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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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선임기자]‘한국 연기의 산증인’인 배우 이순재가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유족에 따르면, 이순재는 노환으로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4살 때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온 이순재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이후 최근까지 7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연극과 드라마, 영화, 연출, 연극 연출, 연기 교육 현장을 바쁘게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아, ‘대발이 아버지’·‘야동 순재’·‘직진순재’ 등의 별칭이 붙었다. 최근에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했다. 지난해 KBS 2TV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해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서울대 철학과 재학 시절 영화를 많이 봤다. 우리 때는 배우가 돈 버는 직업도 아니었고 명망을 얻는 직업도 아니었다”면서 “나는 예술적 욕구와 충동에서 시작했다. 유럽의 작가주의 예술영화, 미국의 장르영화와 영국의 세익스피어 시리즈에 나오는 로렌스 올리비어와 존 길리가드 처럼 작위를 받은 대가들의 명연기를 보면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생활교양지 ‘사과나무’와의 인터뷰에서는 “배우로서 콤플렉스는 없었나요”라는 질문에 “배우로서 핸디캡이 많죠. 남자배우가 최소한 170㎝는 돼야 하는데 난 훨씬 못미치니까. 얼굴도 옥골선풍이 아니고 목소리도 젊어서부터 허스키했어요. 옛날에 영화를 찍는데 이미에 주름이 간다고 감독이 난처해하더라고. 그럼 이마가 빤빤한 놈을 쓰지 하고 톡 쏘아붙였지. 그래서 로미오와 햄릿 같은 배역은 나한테 잘 안와. 하지만 배역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필자는 고인과 인터뷰를 몇차례 했다. 인터뷰를 해보면 그가 얼마나 연기 열정이 넘치는지를 알 수 있다. 자신의 직업인 연기에 대한 철학과 배우의 길을 얘기할 때는 너무 진지했다. 2009년 이순재 씨가 75세때 자신의 집 근처인 서울 강남 영동호텔 커피숍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길어야 1~2시간 예정하고 그 자리에 갔다.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기는 바람에 기자는 사실 배가 고팠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인터뷰는 거의 4시간이나 지속됐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이순재 씨는 4시간 동안 계속 말을 하는데도 별로 힘들어 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에도 한 번도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지 않고 연기와 인생론을 들려주었다.

물론 이순재 씨의 인터뷰에는 후배들을 향해 ‘꼰대’ 같은 지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칙과 도리를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실천한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주지는 않았다.


2013년 방송된 tvN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서 최지우가 “왜 모든 후배, 선배들이 이순재 선생님을 존경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알았다”면서 “큰 형님으로서의 무게감이 확실히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



이순재는 ‘꽃할배’에서 큰형님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승용차를 탈 때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자리를 타인에게 양보한다.

이미 이 때도 80대 고령이었던 고인은 여행중 늦게 일어나 남들을 기다리게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먼저 나와 주위를 둘러보고 새나 오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단체생활의 룰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했다.


이순재는 “연기력은 타고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선천성은 10~20%밖에 안된다. 나머지는 노력이다. 신구 같은 배우가 무슨 끼가 있나? 노력으로 모든 악조건을 극복해낸 것이다. 좋은 조건만 믿고 대충 연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가떨어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언제까지 연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대사가 암기될 때까지다. 현장에서 4~5번 NG 내면 물러날 것이다. 후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술은 원래 못 먹고 82년 ‘풍운’에서 대원군 역을 맡아 담배를 끊은 후 지금까지 금연하고 있다. 운동도 골프 외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인은 그 약속을 지켰다.

이순재의 후배 배우 등 문화계 인사들은 고인에 대해 추모열기를 보이고 있다. 배우 정보석은 SNS에 “선생님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연기도, 삶도, 배우로서의 자세도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면서 “제 인생의 참 스승이신 선생님. 선생님의 한걸음 한걸음은 우리 방송 연기에 있어서 시작이고 역사였습니다”고 썼다.

배우 한지일도 “너무나도 인정 많고 후배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대선배 이순재 형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추모했다.

고인은 최근 건강 문제로 한두차례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당시 고인이 후배 배우 지망생들을 위해 예정된 특강을 못나오게 돼 필자가 대타로 강의한 적이 있어, 필자로서도 고인과의 기억이 각별하다. 연기에서는 누구보다 지독하게도 철저했던 이순재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