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이상일 감독 / 사진=미디어캐슬 제공 |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국보' 이상일 감독이 가부키의 아름다움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보이지 않는 벽을 뚫고 경지에 다다른 '국보'의 숭고함을 3시간에 담아냈다.
'국보'는 국보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뛰어넘어야만 했던 두 남자의 일생일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원작자 요시다 슈이치가 3년간 가부키 분장실을 직접 드나들며 체험한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가부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고전 연극이다. 철저한 가족세습으로 이어져오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전통 예술로 익히 알려져 있다. 진입장벽이 높은 예술을 탐구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과정. 그 중심에는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이 있었다.
이상일 감독은 "기본적으로는 자료를 보고, 문헌을 보고, 옛 영상을 많이 봤다. 현재에도 매달 공연이 진행되고 있어 실제로도 보러 갔다. 눈을 통해 읽는 작업을 많이 했다. 요시다 작가는 무대 뒤에서 검은 옷을 입고 실제로 여러 취재를 했다더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마침 코로나 시기가 겹쳤다"며 "배우들과 다양한 얘기를 나눠가며 깊이를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가부키는 일본 현지에서도 '벽'이 있는 소재다. 하지만 가부키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상일 감독은 온나가타(여자 역할을 연기하는 남자배우)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원작가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가부키는 스타일이 특이하다. 의상이나 화장으로 표현되는 것이 많다. 붉은색 화장을 하면 나쁜 역할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노래는 특이하지만, 주제는 '원수를 갚는다', '애도시대 서민의 일상생활을 그린다'라는 등의 보편적인 내용이다. 그런 내용에 온나가타로 보이는 아름다운 느낌이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가부키는 영화적이라 생각한다. 혈통으로 계승되는 예술이라는 특수성이 있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국보'는 극속에 극 장면이 다수 존재한다. 무대 뒤 배우들의 진짜 삶과 고민, 무대 위 모습, 그리고 이것을 바라는 관객이 있다. 이 3가지의 시점은 하나로 맞물려 인물이 쫓는 '아름다움'으로 연결된다. 이상일 감독은 "가부키라는 예술을 스펙터클 하게 그려야 해 '관객 입장'의 시점이 필요했다. 또 하나는 가부키 영화이면서도 가부키 배우의 영화이기에 배우 입장에서 보는 시점이 중요했다. 세 번째는 그 배우의 내면을 보여줘야했다. 연기하는 것이 아닌,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통이나 압박, 기쁨 등 여러 감정이 보여야 해서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했다"고 말했다.
러닝타임 175분도 그 아름다움을 채우기 모자란 시간 같았다고. 이 감독은 "원작 소설은 더 자세하게 여러 인물들의 인생이 소개돼 있다. 이 중 키쿠오 인생을 특별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는 건 3시간도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3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닌,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라고 얘기했다.
'국보'는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름다움을 쫓는 인간,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그려낸다. "예술이라는 건은 인간의 감성, 사고방식을 어떤 형태로 만들어 주고, 동시에 바꾸어준다고 생각해요. 다만 예술가가 짊어지고 있는 인생을 돌아보면 그저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은 진흙탕 속에 몸을 담고 있죠.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것이 과장될 수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표현하고 싶은 에고이스트적인 예술가적 면모가 있다고 생각해요'.
진입장벽을 뚫은 '국보'는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실사 영화 역사상 두 번째 천만 영화로, 25년 만에 기록을 경신했다.
이 감독은 이번 흥행을 통해 "가부키는 일본에서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가부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부키라는 전통 예술이 어떤 것인지 자세하게 보면 이런 재미가 있구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 같다. 올드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구나를 발견하지 않았나 싶다"며 "원래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무대도 아름답지만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어려움이 많지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란 감동,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사람들이 원하고 있었구나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보'는 애니메이션만 강하다는 일본 영화계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은 "어떤 가능성이 생겼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일본은 애니메이션이 세고 강하고, 대중적인 콘텐츠 영화가 인기가 많다는 풍조가 있었다. 반면 국보는 휴먼드라마고 가부키를 소재로 하고 있지 않나. 또 3시간이라는 시간이 불리한 조건이 있었는데, 이게 이렇게 난리가 났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더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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