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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막말 대변인' 한 명을 못 자르나"... 박민영 감싸는 장동혁 지도부[노변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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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막말 대변인' 한 명을 못 자르나"... 박민영 감싸는 장동혁 지도부[노변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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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2026 북중미 월드컵 16강 진출 목표 변함 없어"
"배려를 당연시" "한동훈 액세서리" 등
비상식적 혐오 발언에도 장동혁은 경고만
"논란 차단해야" 중앙장애위도 침묵 지켜
"비판을 내부총질 취급하면 자정 못해" 우려

편집자주

주말 아침, 다정하고 친근하게 한국 정치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갈등과 분노가 아닌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이 지난 12일 공개된 인터넷 방송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이 지난 12일 공개된 인터넷 방송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국민의힘이 장애인을 혐오하는 정당인가요? 왜 대변인 한 명 때문에 그런 오명을 써야 합니까?"

최근 만난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 소속 박민영 대변인이 촉발한 '장애인 막말 논란'에 한탄을 쏟아냈습니다. 원외 인사이자 장동혁 대표 체제에서 임명된 박 대변인은 최근 한 인터넷 방송에서 같은 당 김예지 의원을 겨냥해 "장애인이라고 배려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등 막말을 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가뜩이나 계엄과 탄핵 뒤 당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는데 장애인 막말 논란까지 감당해야 하냐고 분노한 겁니다.

비판의 화살은 무엇보다 당 지도부를 향했습니다. 당이 박 대변인을 빠르게 해임했다면 '개인 일탈'로 정리됐겠지만, 장동혁 대표가 박 대변인의 사의를 반려했기 때문입니다. '대변인 막말 논란'이 '지도부의 묵인 논란'으로 확전된 것이죠. 보수적 관점에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 신장 방법을 고민해 온 국민의힘 구성원들로서는 싸잡아 매도당하는 게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우려와 자괴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민의힘 지도부는 박 대변인을 해임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당대표의 반성은커녕, 당 중앙장애인위원회조차 이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당내 장애인 정책을 제언하고 감수성 증진 역할을 맡은 기구까지 침묵 일변도인 겁니다. 국민의힘은 왜 막말 대변인 한 명을 못 내쳐서 쩔쩔매고 있는 걸까요.

장애인 단체는 "폭넓은 성과"라는데...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20일 국회에서 개인진정에 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20일 국회에서 개인진정에 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의 발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박 대변인은 지난 12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소속 김예지 의원을 향해 "(비례대표에)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해 문제" "주체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을 한동훈 전 대표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라고 모욕하기도 했죠. 한 전 대표 체제에서 김 의원이 두 번째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점을 겨냥해 비아냥댄 겁니다. 아울러 박 대변인을 초대한 유튜버가 "김예지는 장애인인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장애인이고 계집이니까 이만큼만 (욕)하는 것" 등 폭언을 할 때 박 대변인은 크게 웃으며 동조했습니다.

상식 이하의 대화에 비판이 쏟아지자 박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무지성 혐오몰이"라고 오히려 반발했습니다. 자신은 김 의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반대하라는 당론을 어기고 찬성표를 던진 것을 비판하는 등 의정 활동을 지적했을 뿐 장애인 혐오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언어의 부적절성이 있었다"며 혐오 발언을 '표현의 문제'로 축소하기도 했죠.


장애인 단체들은 격하게 반발했습니다. 한국 국민 중 장애인 비율은 약 5%인데 반해, 22대 국회의원 중 장애인 비례대표 의원은 단 3명(약 1%)에 불과합니다. "장애인을 너무 할당해서 문제"라는 말부터가 국회에 장애인 대표성을 반영할 필요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입니다.

게다가 김 의원은 법률소비자연맹의 의정활동 지표에서 21대 국회 기준 14위를 하는 등 의정 성과를 인정받았고, 국회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결의안 통과를 주도하는 등 장애인 인권 신장에 앞장선 인물입니다. 한국장애인연맹은 2022년 김 의원에게 공로패를 수상하면서 "장애인이 당당한 주체자로서 삶을 영위하도록 폭넓은 의정활동을 보여줬다고"고 감사를 표하기도 했죠.

그런데도 "주체성을 가지는 게 아니라 배려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박 대변인의 비난이 설득력이 있을까요. 박 대변인이 던진 혐오는 "빨리 숙청해야 한다(전한길씨)" 등 극단적 폭력의 메아리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장 대표가 당연히 정리했어야 했던 문제"


박 대변인의 막말 파문 관련해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장 대표가 당연히 앞장서서 정리했어야 했던 문제"라고 단언했습니다. 대변인 한 명의 막말 탓에 당이 장애인 혐오 집단으로 매도되는 것을 진작에 차단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논란이 알려진 전날인 11일은 장동혁 지도부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연례 행사에 총출동하기도 했죠. 당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장애인 권익 문제를 더 신경 쓰기 시작해 고무적이라는 당내 여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번 사태가 터진 뒤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 경고'를 하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했고, 송언석 원내대표도 사안에 대한 대응을 묻는 질문에 "자그마한 내부적인 일을 가지고 오랫동안 집착해서 기사화하려고 하느냐"고 반발했습니다. 박 대변인을 쳐내기보단 감싸는 길을 택한 겁니다.

이런 선택을 두고 당내에서는 "장 대표가 '자기 정치 욕심' 탓에 당을 수렁에 빠뜨릴까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장 대표가 박 대변인을 지킨 건 결국 '내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장 대표는 '윤어게인(윤석열 어게인)' 세력에 힘입어 전당대회를 승리했고, 박 대변인은 '윤석열 절연'을 요구하는 당내 인사, 특히 한 전 대표를 노골적으로 조롱하며 아스팔트 강성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인기몰이한 인물입니다. "우리가 황교안" 발언 등 점점 극단화되는 장 대표 언행에 대한 당내 반발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 편'인 박 대변인을 내치기는 쉽지 않았던 거죠.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를 국민의힘의 장애인 혐오 문제가 아닌, 계파 갈등 문제로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박 대변인의 조롱에 부글부글하던 친한계가 김 전 의원에 대한 말실수를 빌미로 박 대변인 내쫓기에 나섰다는 시각입니다. 이번 사태 전에도 박 대변인이 유튜브 방송에 나와 친한계를 "암세포"에 비유하는 등 부적절한 언사를 남발해 지도부 인사들이 고성까지 지르며 해임을 요구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장 대표는 묵묵부답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제는 이번 사안을 계파 갈등으로만 접근한다면, 자정 요구가 설자리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공당이 장애인 혐오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적 문제 제기가 '장동혁 지도부 흔들기'로 납작하게 치환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중앙장애인위 관계자는 이번 사안 관련 지도부에 별도의 우려를 전달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 "장애인들 마음에 더 귀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듣고 있다"면서도 "논란이 더 확산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비판을 '내부총질'로 치부하니 장애인 기구마저 '침묵이 더 낫다'는 자기모순적 결론에 빠지는 형국입니다.

한 당직자는 "20% 안팎 지지율 정체에 빠진 당을 살리는 길은 극단 세력과의 단절밖에 없는데, 그들을 지지층으로 둔 장 대표가 결단을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한탄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은 12월 3일 불법 계엄 1년을 앞두고 장 대표가 대국민 사과 등 중도 확장을 위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 대표도 공감을 표했다지만 아직까지 가시적 움직임은 없습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박지연 인턴 기자 partyuy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