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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방송은 사고 한참 뒤에나…‘가만히 기다려달라’ 세월호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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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방송은 사고 한참 뒤에나…‘가만히 기다려달라’ 세월호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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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해양경찰서 전용 부두로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 탑승객들이 구조돼 이동하고 있다. 267명이 탑승한 퀸제누비아2호는 이날 오후 8시 17분께 전남 신안군 장산도 남방 족도에 좌초됐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해양경찰서 전용 부두로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 탑승객들이 구조돼 이동하고 있다. 267명이 탑승한 퀸제누비아2호는 이날 오후 8시 17분께 전남 신안군 장산도 남방 족도에 좌초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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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새벽 5시45분께 전남 목포시 목포항 삼학부두에 입항한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는 전날 밤 사고 여파를 보여주듯 곳곳이 파손돼 있었다. 뱃머리 아래쪽에 있는 구상선수(파도 저항을 줄여주는 구조물)는 강한 충격으로 휘어져 하늘을 향하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하게 붙어 있었다. 선체 하부는 군데군데 구멍이 보였고 뱃머리 아래쪽부터 선체 중간까지 길게 긁힌 흔적도 있었다. 뱃머리에는 꺾인 나뭇가지도 끼어 있었다.




목포와 제주를 하루 두 차례 오가는 퀸제누비아2호는 전날 저녁 8시17분께 전남 신안군 장산면 족도에서 좌초했다. 오후 4시45분께 승객 246명, 승무원 21명 등 267명을 태운 채 제주항을 출발해 목포항을 30여㎞ 앞둔 지점이었다. 딴짓을 하다 정상 항로를 벗어난 한국인 1등 항해사와 인도네시아 출신 조타수는 0.05㎢의 작은 무인도인 족도를 100m 앞두고 급하게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2만6000t의 육중한 선체는 22노트(시속 40㎞)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섬으로 돌진해 올라탄 뒤 왼쪽으로 15도 기울어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19일 밤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에서 좌초한 ‘퀸제누비아2호’ 승객들이 해경의 도움을 받아 목포해경 전용부두로 이동하고 있다. 목포해경 제공

19일 밤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에서 좌초한 ‘퀸제누비아2호’ 승객들이 해경의 도움을 받아 목포해경 전용부두로 이동하고 있다. 목포해경 제공


큰 충격음이 들렸고 선체 내 집기들도 크게 흔들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놀란 일부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구조를 기다렸다. 사고 발생 20여분 뒤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다행히 침수 가능성을 낮게 봤다.



선체 뒤쪽 차량을 싣는 램프에서 대기하던 승객들은 해경 안내에 따라 구조정으로 이동했고 임신부, 노약자, 부상자 등 우선순위에 따라 총 6차례로 나눠 목포해경 전용부두에 도착해 육지에 올랐다. 모든 승객이 땅을 밟은 시간은 애초 목포항 도착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 늦은 밤 11시30분이었다.



19일 밤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에서 좌초한 ‘여신 제 누비아 2호’가 목포 삼학부두에 입항해 있다. 목포해경 제공

19일 밤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에서 좌초한 ‘여신 제 누비아 2호’가 목포 삼학부두에 입항해 있다. 목포해경 제공


육지에 오른 승객들은 가슴부터 쓸어내렸다. 긴장감이 풀린 듯 자리에 잠시 주저앉는 모습도 보였다.



한 중년여성은 잔교를 건너자마자 취재진에게 “몸이 넘어질 정도로 충격이 컸다. ‘쿵’ 소리가 난 뒤에는 정신이 없었다”고 전했다. 한 70대 남성도 “소리가 엄청 컸다. 안내방송은 사고가 난 지 한참 뒤에야 나왔다.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달라’고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승객들은 “세월호 사고가 떠올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이번 사고로 크게 다친 승객은 없었으나 30명이 허리통증,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대부분 귀가했다.



사고 여객선을 운영하는 씨월드고속훼리㈜는 사고 발생 20여시간 만에 누리집에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올려 “큰 놀라움과 불편을 겪으셨을 탑승객 여러분과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유관기관 합동 수사팀의 조사에도 성실히 임해 사고 경위를 명확히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해 선박 운항 전 과정에 대한 안전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를 지켜본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장동원 세월호참사 유가족협의회 총괄팀장은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차분히 램프에서 대기하는 모습을 보고 지난 10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만 국민의 안전의식은 성숙했지만 여객선 종사자들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한 것 같다. 철저한 책임자 처벌, 승객 보상과 함께 트라우마 치료도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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