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휴직 경찰관
중고 거래하다 '피싱 위기' 노인 구제
직접 범죄 확인 후 자녀에 인계·신고까지
이달 3일 서울 구로구 한 교회 앞.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으로 지금은 휴직 중인 8년차 경찰관 고모(33) 경장이 임윤자(78)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 경장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에 내놓은 카디건을 임씨가 사기로 해 거래할 예정이었다. 15분이 지나도 임씨가 나타나지 않아 고 경장은 전화를 걸었다. 임씨는 "경찰에서 전화가 와 은행에서 급하게 돈을 찾느라 늦는다"고 했다. 고 경장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전형적인 경찰 사칭 전화사기(보이스피싱) 수법이어서다.
뒤늦게 도착한 임씨가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며 꺼낸 얘기를 들은 고 경장은 아찔했다. 임씨에 따르면 주민센터에서 "명의도용 사건에 연루됐다"는 연락이 왔고, 곧바로 강서경찰서 고위 간부라는 남성에게 전화가 와 "계좌의 돈을 모두 인출하고 자택에 둔 현금도 샅샅이 뒤져 대기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놀란 임씨는 자신이 지난해 남편을 떠나보낸 홀몸이란 사실과 자택 주소 등 개인정보까지 알려준 뒤 숨 가쁘게 은행으로 뛰었다고 했다. 실제로 계좌에 든 320만 원을 몽땅 인출한 임씨는 남성에게 "중고거래만 하고 얼른 집에 가겠다"고 알린 뒤 고 경장을 만나러 왔다.
고 경장은 임씨를 뜯어말렸다. 수년 전 경찰서 민원실에 근무하며 만난 수많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처럼 임씨가 타깃이 된 것을 직감했다. 고 경장은 "돈을 출금하라는 경찰은 세상에 없다"고 범죄조직 수법이라 일러줬지만, 임씨는 고 경장 얘기를 쉽게 믿지 못했다.
중고 거래하다 '피싱 위기' 노인 구제
직접 범죄 확인 후 자녀에 인계·신고까지
3일 고 경장과 임윤자씨가 나눈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 대화 내용 캡처. 고 경장 제공 |
이달 3일 서울 구로구 한 교회 앞.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으로 지금은 휴직 중인 8년차 경찰관 고모(33) 경장이 임윤자(78)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 경장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에 내놓은 카디건을 임씨가 사기로 해 거래할 예정이었다. 15분이 지나도 임씨가 나타나지 않아 고 경장은 전화를 걸었다. 임씨는 "경찰에서 전화가 와 은행에서 급하게 돈을 찾느라 늦는다"고 했다. 고 경장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전형적인 경찰 사칭 전화사기(보이스피싱) 수법이어서다.
뒤늦게 도착한 임씨가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며 꺼낸 얘기를 들은 고 경장은 아찔했다. 임씨에 따르면 주민센터에서 "명의도용 사건에 연루됐다"는 연락이 왔고, 곧바로 강서경찰서 고위 간부라는 남성에게 전화가 와 "계좌의 돈을 모두 인출하고 자택에 둔 현금도 샅샅이 뒤져 대기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놀란 임씨는 자신이 지난해 남편을 떠나보낸 홀몸이란 사실과 자택 주소 등 개인정보까지 알려준 뒤 숨 가쁘게 은행으로 뛰었다고 했다. 실제로 계좌에 든 320만 원을 몽땅 인출한 임씨는 남성에게 "중고거래만 하고 얼른 집에 가겠다"고 알린 뒤 고 경장을 만나러 왔다.
고 경장은 임씨를 뜯어말렸다. 수년 전 경찰서 민원실에 근무하며 만난 수많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처럼 임씨가 타깃이 된 것을 직감했다. 고 경장은 "돈을 출금하라는 경찰은 세상에 없다"고 범죄조직 수법이라 일러줬지만, 임씨는 고 경장 얘기를 쉽게 믿지 못했다.
이에 고 경장은 자신이 경찰관이라고 밝힌 뒤 강서서 민원실에 직접 전화해 임씨와 통화한 남성이 밝힌 이름과 연락처를 불러주며 "경찰이 아니다"는 답변을 스피커폰으로 들려줬다. 사기 전화였음을 깨달은 임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순간에도 사기 전화는 계속 왔다. 혼자 사는 집 주소까지 알려줬기에 더 불안해 하는 임씨에게 고 경장은 "데리러올 수 있는 가족에 연락하라"고 권했고, 임씨 딸이 올 때까지 30분 넘게 곁을 지켰다. 고 경장은 "어르신이 너무 무서워했고, 현금을 뽑아놓은 상태여서 걱정이 컸다"며 "가족에게 안전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음 날까지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온다는 임씨 얘기를 들은 고 경장은 지구대에 해당 번호를 신고하도록 안내하기도 했다.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고모 경장이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 경장은 여경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신경 쓰여 얼굴 공개는 어렵다고 했다. 권정현 기자 |
그 사건 이후 임씨는 매일 고 경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두 사람은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임씨는 "보이스피싱범을 경찰로 철석같이 믿고, 얼마 없는 재산이 부끄러워 남편 병원비를 대느라 돈이 없다는 사정까지 털어놨다"며 "고 경장 아니었다면 하루아침에 돈을 잃고, 살아갈 마음까지 꺾였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 경장은 "어르신들을 상대로 범죄에 연루됐다고 겁줘 돈을 뜯는 수법이 만연하다"며 "금전을 요구하는 전화가 오면 의심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꼭 알리고 도움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검찰·경찰 등 공공기관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2020년 2,252건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6,367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전체 피해자 가운데 임씨처럼 심리적 압박에 취약한 70대 이상이 2020년 673명에서 지난해 1,31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현장을 발로 뛰며 시민을 돕기 위해 경찰이 됐다는 고 경장은 "주민분들이 사소한 도움에도 고맙다고 하실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휴직 중이었지만 우연히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미소 지었다.
권정현 기자 hhhy@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