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시장 진출
부실채권 매입 후 되팔기로 수익 올리다
외환은행 인수... '헐값 매각' 논란 이어져
시장 철수 이후 손해봤다며 46억 달러 소송
국내 사모펀드 확대·당국 심사 강화 등 변화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론스타와 이어져온 긴 악연이 22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론스타 사태는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시작해 인수·재매각, 국제투자분쟁사건(ISDS)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국내 금융권과 정치권, 시민사회 전반에 큰 상흔과 교훈을 남겼다.
론스타 사태의 시발점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업 부실이 급증하며 외환은행이 위기에 빠지자 정부는 외자 유치를 통한 매각을 추진했다. 이때 인수자로 등장한 것이 미국 댈러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론스타였다.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부실채권을 공격적으로 사들인 뒤 경기 회복기에 되파는 방식으로 높은 수익을 올려온 투자사다.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대형 투자처로 점찍은 것이 외환은행이었다.
론스타는 2003년 약 11억 달러(당시 환율기준 1조3,000억 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했지만 그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금융당국이 예외규정인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이유로 인수를 승인했는데 금산분리 원칙상 PEF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데도 당국이 적격성 심사를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부를 헐값에 팔았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이에 검찰이 헐값 인수 의혹 수사에 나서며 '론스타 게이트'로 번졌고 한동안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뒤흔들렸다.
부실채권 매입 후 되팔기로 수익 올리다
외환은행 인수... '헐값 매각' 논란 이어져
시장 철수 이후 손해봤다며 46억 달러 소송
국내 사모펀드 확대·당국 심사 강화 등 변화
론스타 한국 사무실이 있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로비. 한국일보 자료사진 |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론스타와 이어져온 긴 악연이 22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론스타 사태는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시작해 인수·재매각, 국제투자분쟁사건(ISDS)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국내 금융권과 정치권, 시민사회 전반에 큰 상흔과 교훈을 남겼다.
론스타 사태의 시발점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업 부실이 급증하며 외환은행이 위기에 빠지자 정부는 외자 유치를 통한 매각을 추진했다. 이때 인수자로 등장한 것이 미국 댈러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론스타였다.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부실채권을 공격적으로 사들인 뒤 경기 회복기에 되파는 방식으로 높은 수익을 올려온 투자사다.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대형 투자처로 점찍은 것이 외환은행이었다.
론스타는 2003년 약 11억 달러(당시 환율기준 1조3,000억 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했지만 그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금융당국이 예외규정인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이유로 인수를 승인했는데 금산분리 원칙상 PEF가 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데도 당국이 적격성 심사를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부를 헐값에 팔았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이에 검찰이 헐값 인수 의혹 수사에 나서며 '론스타 게이트'로 번졌고 한동안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뒤흔들렸다.
9년 뒤인 2012년에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면서 4조 원이 넘는 차익을 남기며 '먹튀 논란'으로 다시 불이 번졌다. 사들인 가격의 3배였다. 론스타는 매각 직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뒤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고의로 지연해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론스타는 2006년부터 외환은행 매각을 추진했는데 당국이 의도적으로 매각가격 인하를 유도하며 승인심사를 지연시켰다고 주장했다. 론스타는 2007년 HSBC은행과 5조9,000억 원대 규모로 외환은행 매각 계약을 체결했으나, 당국의 승인 절차가 지연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매각이 무산된 바 있다. 이렇게 지연됐다는 이유로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은 46억7,950만 달러(약 6조1,000억 원)에 달했다.
김민석(가운데) 국무총리가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론스타' ISDS 취소 신청 관련 긴급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ISDS에서 벌어진 2라운드는 론스타의 일부 승리로 결론 났다. 10년에 걸친 심리 끝에 2022년 8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에 해당하는 2억1,65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당시 환율기준으로는 2,800억 원이었다.
양측은 모두 반발했다. 론스타는 배상금이 충분치 않다며, 정부는 판정의 절차상 위법성을 문제 삼아 2023년 7월 판정 취소를 신청했다. ISDS는 단심제인 만큼 판정 취소가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절차였다.
마지막 3라운드에선 한국 정부가 웃었다. 18일 ICSID의 론스타 ISDS 취소위원회는 정부의 배상 및 이자 지급 의무를 모두 취소했다. 동시에 론스타엔 30일 내에 한국 정부의 소송비용 73억 원을 보상하라는 결정도 내렸다. 13년에 걸친 국제소송이 사실상 한국 정부의 승리로 막을 내린 것이다.
국내 사모펀드 육성, 금융감독 강화... 론스타 사태가 남긴 것
게티이미지뱅크 |
론스타 사태는 한국 경제·금융 지형에 여러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외국계 투기 자본에 대응하기 위한 '토종 자본' 육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며 2004년 사모펀드 제도가 공식적으로 도입됐다. 소위 '먹튀'를 막기 위한 여러 규제도 제도화됐다.
PEF 운용사는 경영 참여라는 도입 취지에 맞게 기업의 의결권 있는 지분 10% 이상을 취득하고 최소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했다. 연기금 등 전문기관 투자자(LP)들이 PEF 투자자로 함께 참여해 견제·감시하는 구조도 갖췄다. 론스타 사태를 계기로 외국계 투기자본의 단기 차익 실현을 막고, 동시에 국내 자본을 활용한 기업 구조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 장치였다.
국내 사모펀드 시장도 이때를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외국계 PEF들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을 주도했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MBK파트너스·한앤컴퍼니·스카이레이크 등 토종 운용사들이 대형 거래를 잇달아 성사시키며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쥐기 시작했다. 현재는 인수금융·인프라·기업 구조조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PEF들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만큼 규모와 영향력이 커졌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
금융감독 체계 전반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대주주적격성 심사가 대폭 강화됐다. 금융회사를 인수하려는 대주주는 자금 출처, 산업자본 여부, 해외 관련 규제 등을 엄격히 검증받게 됐다. '부실은행 정리' 명목으로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넓게 인정하던 관행도 사라졌다.
정부 차원의 ISDS 대응 역량도 한층 강화됐다. 론스타는 외국계 기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첫 ISDS 사례였다. 법무부를 중심으로 외교부·금융위원회·국세청 등 관계 부처가 합동 대응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대형 외국인 투자 인허가 사안에서는 사전에 국제중재 리스크를 검토하고 정책 도입·규제 변경 시 분쟁 리스크 분석을 의무적으로 병행하는 흐름도 강화됐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론스타 사태는 국내 금융이 글로벌 대형자본과 처음 제대로 마주한 사건이었다"라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금융정책·감독체계가 전반적으로 변화하게 만든 이정표가 됐다"고 전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