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뉴욕의 겨울을 밝힌 청춘의 노래…30주년 뮤지컬 ‘렌트’의 귀환

매일경제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원문보기

뉴욕의 겨울을 밝힌 청춘의 노래…30주년 뮤지컬 ‘렌트’의 귀환

서울맑음 / 3.8 °
‘렌트’의 보헤미안 예술가 정신을 담은 넘버 ‘라 비 보엠(La Vie Bohème)’을 연기하고 있는 모습. [신시컴퍼니]

‘렌트’의 보헤미안 예술가 정신을 담은 넘버 ‘라 비 보엠(La Vie Bohème)’을 연기하고 있는 모습. [신시컴퍼니]


“다른 날은 없어, 우리에게는 오직 오늘뿐.”

불확실한 삶 속에서도 주어진 오늘을 소중히 살아내자는 메시지를 담은 뮤지컬 ‘렌트’가 초연 30주년을 맞아 국내 관객을 다시 찾는다.

조너던 라슨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1990년대 초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죽음과 맞서며 자유와 예술을 붙잡던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을 그린다.

작품은 오페라 ‘라보엠’을 뉴욕의 현실에 맞춰 재구성했다. 작곡가 로저는 연인의 죽음 이후 마음을 닫고, 영화감독 마크는 예술과 생계 사이에서 흔들린다. 무용수 미미, 드래그퀸 앤젤, 철학과 교수 콜린스, 퍼포먼스 아티스트 모린, 변호사 조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작은 공동체를 이룬다. 이들은 가난·에이즈·약물중독·차별·집세 연체 등 현실의 압박 속에서도 예술과 자유의 불씨를 지키려는 의지로 서로를 지탱한다.

당시 뉴욕 예술계는 죽음의 공포에 잠식돼 있었다. ‘검은 피카소’로 불렸던 그래피티아티스트 바스키아는 1988년 약물 과다로, 천재 사진작가 메이플쏘프는 1989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가 낸 골딘은 “사람들이 픽픽 죽어나가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회상했다. 에이즈는 ‘동성애자 질병’이라는 낙인과 결합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만든 재난이었다. 작품 속 에이즈는 단지 파격적 소재가 아니라 당시의 긴박한 시대 그 자체였다.

에이즈를 앓으며 홀로 버텨온 무용수 미미역을 맡은 김수하 배우가 무대 위에서 배역을 연기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에이즈를 앓으며 홀로 버텨온 무용수 미미역을 맡은 김수하 배우가 무대 위에서 배역을 연기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라슨 역시 에이즈로 친구들을 여럿 떠나보냈다. 그는 7년 넘게 ‘렌트’에 매달리며 조용히 사라져간 친구들의 이름을 작품 속에 남겼다. 그러나 초연을 단 하루 앞둔 1996년, 라슨은 35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배우들은 모여 ‘Seasons of Love’를 부르며 그를 추모했고, 예정대로 공연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렌트’는 이후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동시에 받으며 전설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공연은 2020년부터 참여해온 협력 연출 엔디 세뇨르가 다시 합류해 뉴욕적 감성을 세밀하게 구현했다. 세뇨르는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앤젤 역을 맡았던 인물로, 원작의 시대성을 국내 무대에 자연스럽게 이식했다. 따뜻한 크리스마스 조명 아래 펼쳐지는 겨울 뉴욕의 거리, 1990년대 특유의 개성 넘치는 의상들도 작품의 시간적 분위기를 살린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앤젤을 맡은 조권은 캐릭터의 생명력과 따뜻함을 섬세하게 구현했고, 모린을 연기한 김수연은 자유분방한 퍼포먼스 넘버 ‘Over the Moon’을 힘 있게 이끌었다.

에이즈가 더 이상 불치병은 아니지만,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라는 ‘렌트’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렌트’는 1990년대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서로의 불씨를 지켜주던 청춘들의 목소리를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시 전한다. 공연은 코엑스아티움에서 2월22일까지.

마크역을 맡은 양희준 배우와 로저역을 맡은 유태양 배우가 함께 무대위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신시컴퍼니]

마크역을 맡은 양희준 배우와 로저역을 맡은 유태양 배우가 함께 무대위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신시컴퍼니]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