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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칼럼] 검사들, 왜 이리 비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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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칼럼] 검사들, 왜 이리 비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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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 포기에서 드러난 정치 검찰 민낯
수사권 요구 전 편파적 수사 돌아보길
민주당, 개혁 내세워 검찰 장악 말아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비공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비공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해병대 박정훈 대령은 채수근 상병 죽음에 책임자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뒤 항명죄로 기소됐다. 그렇게 해서 전우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켰다. 류혁 법무부 전 감찰관은 계엄 직후 회의에 불려갔다가 사표를 던졌다. 불법적 지시를 따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유모 방첩사 사이버보안실장은 법정에서 선관위 서버 압수는 불법이라 판단해 이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비상계엄의 주범으로 꼽히는 방첩사 내부에도 저항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걸 꼭 기록에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계엄이 성공하고 윤석열 정권이 유지됐다면 더 큰 고초를 치렀을 이들이다. 때로 제 할 일을 하는 데에도 자리를 걸어야 하는 게 무참한 현실이다. 정의를 지키고 계엄을 막은 건 고초를 감수한 그들이 있어서다. 대장동 사건 항소는 이런 결기에 비견할 수 없다. 그런데도 검사들은 어쩌면 이렇게 비겁한가.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14일 퇴임식에서 “우리 검찰이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법치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온 진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도 안 믿을 말이다. 전날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뭐라고 했나. 그는 “정권하고 검찰이 방향이 같았으면 무난했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역방향”이라며 “사건에 대한 결이 다른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앞서 “전 정권이 기소했던 게 전부 현 정권 문제가 돼 버리니까 (…) 부대껴 왔다”거나 “용산·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했다”는 말도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검찰의 중립성·독립성은 신경 쓰는 기색조차 없다. 윤석열 정권에서 더불어민주당 사건만 수사한 게 문제가 아니라 정권이 교체된 게 문제라는 투다. ‘대통령 관련 사건이 아니면 항소를 포기하겠냐’는 상식적인 반문은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윗선’을 따르는 게 “조직을 위한 결단”이었으니 후배들이 나가 달라는 말에 “온 천지가 다 아팠”을 게다.

물론 국민들은 알고 있다. 검찰이 권력과 결을 맞추다 못해 권력 자체가 되었다는 것을. 이례적인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검찰을 시녀로 쓴 정치권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신중히 검토하라”는 법무부 장관에게 엎드린 검찰 수장 밑에는 항소장을 접수하지는 못하고 물러난 서울중앙지검장이 있다. 김건희 여사를 늑장수사 끝에 무혐의 처분하고, 정치인과 문재인 정부 공무원은 물론 비판 언론까지 무리하게 수사하고, 정부 요직에 직행하고, 다 보고도 입 다물었던 검사들이 있다.

만약 항소장이 접수됐다면 여당에선 “명백한 국기문란”(정청래 대표) “사실상 쿠데타·반란”(김병기 원내대표)보다 험한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민주당의 몫이었을 것이다. 부당한 계엄 지시를 거부한 군인들을 진급시키면서, 검사동일체 원칙도 폐지된 지 오래인 검사들의 이견을 쿠데타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검찰은 개혁되어야 한다. 하지만 검사를 탄핵절차 없이 파면할 수 있게 하는 법 개정이나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들을 평검사로 전보시키는 건 검찰개혁이 아니다. 오히려 정권이 검찰을 직접 장악할 수 있게 하는 길이다. 정권이 바뀌었을 때 민주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제도다. 그런데도 검찰이 명분이 없으니 민주당은 무리수를 남발한다. ‘검찰은 당해도 싸다’는 강성 여론을 만족시키는 데에 개혁을 소모하고 있다.


검사들은 검찰개혁의 피해자가 아니다. 검찰총장부터 평검사까지 권한의 크기만큼 책임이 있다. 보완수사권을 달라고 주장하기 전에 정권에 따라 편파적으로 수사권을 남용한 것을 어떻게 자정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바란다. 검찰총장이 대선에 직행하는 것에는 단일한 입장을 내야 하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기 바란다. 외압뿐 아니라 검찰 내부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검사들은 무엇에 저항했는가. 무엇을 지켰는가.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