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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자제' 중국 초강수에…'대만 발언 철회도 못하고' 전전긍긍 다카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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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자제' 중국 초강수에…'대만 발언 철회도 못하고' 전전긍긍 다카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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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자제 이어 무력 시위 나선 중국
"악수 직후 체면 구긴 시진핑" 평가도
강성 보수층 의식해 묘수 못 내는 일본
강대강 대치 자제하며 중국과 대화 시도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한국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계기로 정상회담을 열고 악수하고 있다. 경주=교도·로이터 연합뉴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한국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계기로 정상회담을 열고 악수하고 있다. 경주=교도·로이터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현직 총리 최초로 '대만 유사시 개입'을 시사했다가 중국의 거센 반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본 여행·유학 자제 조치'까지 단행한 중국을 달래려면 발언을 철회해야 하지만, 중국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돼 지지층 반발을 살 게 뻔하다. 중국도 보복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어,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여당은 관계 안정화를 위해 중국과의 대화 시도에 나설 방침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세이지 관방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입장 차이가 있기에 (중국과) 다층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며 인내심을 갖고 대(對)중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차카와 게이이치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을 조만간 중국에 파견해 중국 측을 설득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국 '희토류 수출 규제' 낼까 불안한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국회에서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국회에서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이 대화를 서두르려는 건 중국이 보복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불안에서다. 최근 중국은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자 소원했던 대일 관계 회복에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만나 중일관계 발전에 의욕을 보인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은 정상회담 후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고 일본인 대상 단기 비자 면제 조치도 연장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중국이) 대만 유사시 무력행사를 수반하면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한 후 양국 관계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요미우리는 "다카이치 총리가 중국과 악수를 하자마자 대만 문제를 언급해, (중국으로선) '시 주석이 체면을 구겼다'고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중국은 발언 직후 외교부 등 공식 채널에선 엄중히 경고하는 선에 그쳤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하자 공세 수위를 높였다. 13일 중국 외교부는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면 타 죽는다"라고 하더니 한밤중에 주중 일본 대사를 초치했고, 14일 국방부는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까지 했다.

15일부터는 경제·군사적 실력행사에 나섰다. 주일중국대사관은 '자국민 일본 방문 자제'를 권고했고, 16일엔 교육부가 '일본 유학을 신중히 검토하라'고 나섰다. 또 해경국은 이날 "해경 1307함정 편대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순찰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중국의 공세가 '희토류 수출 금지' 같은 초강경 경제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중국은 과거 센카쿠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과의 갈등이 격화하자 2010년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금지해 큰 타격을 준 바 있다.

G20 정상 대화 불발 우려에 냉각기 지속



리창(왼쪽 두 번째) 중국 총리가 지난달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해 있다. 쿠알라룸푸르=뉴시스

리창(왼쪽 두 번째) 중국 총리가 지난달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해 있다. 쿠알라룸푸르=뉴시스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중국을 달래려면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해야 하지만, 이미 '철회하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에서 번복할 경우 중국에 굴복한 꼴이 된다. 요미우리는 "다카이치 총리는 (발언 철회 시) 지지층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중국이 추가 요구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상 간 대화로 풀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오는 21~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리창 중국 총리와 다카이치 총리 간 정상회담을 조율했지만, 이번 사태로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외무성 관계자는 교도통신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여당은 일단 수위 조절을 하려는 모습이다. 집권 자민당 내부에선 다카이치 총리를 향해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글을 올린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실행에 옮기면 사태만 키운다며 자제하자는 분위기다. 외무성 간부는 아사히에 "지금은 냉각기간을 둬야 한다는 인식이 (정부 내부에서) 강하다"고 말했고, 다른 정부 관계자도 "신중하고 끈기 있게 경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