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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도 있다, 공수처 들어오면 부숴버려” 윤석열 말에 놀란 경호처 간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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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도 있다, 공수처 들어오면 부숴버려” 윤석열 말에 놀란 경호처 간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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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한미 안보 실무협의 가시적 성과 내년 전반기 돼야"
식사 도중 발언···반찬·후식 등까지 메모
법정서 “정확하게 저 단어 쓴 것으로 기억”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둔 지난 1월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헬멧과 전술복 등을 착용한 경호처 관계자들이 경내를 살펴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둔 지난 1월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헬멧과 전술복 등을 착용한 경호처 관계자들이 경내를 살펴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밀고 들어오면 아작난다고 느끼게 위력순찰해라. 티비에 나와도 괜찮다. 여기는 미사일도 있다. 공수처가 들어오면 부숴버려라”

12·3 불법계엄 사태를 일으키고 관저에서 칩거하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경호처 간부들과 식사 도중 이런 말을 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이모씨(당시 대통령경호처 경호5부장)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에 윤 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이씨는 25년간 경호처에서 일했기에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겠다” “오찬자리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반찬은 목이버섯, 후식은 딸기…“신빙성 증명하려” 치밀하게 기록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백대현)은 14일 윤 전 대통령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법정에서 이씨는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한 차례 불발되고 8일이 흐른 지난 1월11일, 윤 전 대통령과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 등 9명이 참석한 오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씨는 1시간30분가량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이 말한 내용, 오찬 참석자, 식사 메뉴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는 내란 특검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이 자료를 스스로 제출했는데, 이날 법정에서 처음으로 내용이 공개됐다.

메뉴 : 반찬(단무지 목이버섯 땅콩) 깐풍새우 잡탕밥 후식(딸기 배 키위)
각 나라 이야기
기업 법인세 (OECD 표준보다 높다)

경찰이 경호관 상대하려면 100명 필요(총도 못 쏜다 개인 지정화기 필요)

경호처가 나의 정치적 문제로 고생이 많다. 밀고 들어오면 아작난다고 느끼게 위력순찰하고 언론에도 잡혀도 문제없음

설 연휴 지나면 괜찮아진다. 헬기를 띄운다. 여기는 미사일도 있다. 들어오면 위협사격하고 ?를 부셔버려라.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경고용이었다. 국회의원 체포하면 어디에 가두냐? 관련 뉴스는 다 거짓말이다.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 한시간 동안은 “흥미 위주의 평이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에 대화를 풀어가실 땐 좌파정권 우파정권 이야기하면서 캐나다 총리 사임, 그런 얘기를 하셨고. (중략) ‘호남 사람들은 자식 잘되기 좋아하면서 대기업 잡는 민주당을 찍는다’ 이런 이야기를 약간 유머스럽게 하셨습니다. 한 시간 정도 풀어가시다가 한 20~30분 정도 (체포영장) 집행 저지 언급이 나왔습니다.”


이씨는 “정확하게 저 단어들을 쓴 거로 기억한다”면서 “무장한 채로 총기 노출하는 것도 괜찮다, 티비(TV)에 나와도 괜찮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께서 무슨 말을 하시려고 하다가 갑자기 약간 멈칫하시더니, 말을 순화시키려는 듯이 ‘부숴버려라’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윤 전 대통령 측 송진호 변호사는 ‘부숴버리라’는 대상이 메모에 나오지 않는 점을 노려 ‘대상이 정확히 누구냐’고 캐물었다. 이씨는 “공수처”라고 답했다. 송 변호사가 ‘정확히 그런 워딩을 한 게 맞냐’고 재차 물었지만, 이씨는 “공수처와 경찰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와중에 마지막에 쓴 표현”이라고 짚었다.

송 변호사는 ‘외부인에게 보고하려 작성한 게 아니냐’면서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이에 이씨는 “절대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처음 까는 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체포영장 집행을 막은 일로 수사와 재판이 시작될 거로 예상했고, 이에 대비해 신빙성 있는 증거를 남기려 했다고 강조했다.


“(오찬) 다음 날 아침 6시 이후로는 오찬에 대해서 기록을 안 남겼습니다.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오염될 수 있어서 그때까지만 기록했습니다. (중략) 전언으로 돌았던 얘기, 카더라, 이런 건 빼고 정확하게 워딩만 적어야 제가 얘기했을 때 신빙성이 증명되니까.”

“경호처 직원 80~90%가 영장 막지 말자고 했다”


이씨는 공수처의 첫 번째 체포영장 집행이 무산된 이후로 “다이어리에 행적을 기록하면서, 제 행동들이 나중에 어떤 법적 책임이 있나 고민했다”고 이날 법정에서 털어놨다.

공수처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 시도’를 한 지난 1월15일에는 경호처 간부와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했고, 이 자리에서 “직원들 가운데 80~90%는 영장(집행)을 막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는 취지로도 증언했다.


같은 날 이씨는 경호5부 소속 경호관들에게 ‘영장 집행을 막지 말라’는 지침을 하달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33분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공수처에 체포됐다.

이씨는 “이런 지침을 내린 이유가 뭐냐”는 특검 측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2·3 계엄 당시에 707특임단 부대원들이 국회에서 하는 행동을 보고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고, 1차 (체포영장) 집행이 끝나고 현장에 투입됐을 때 철조망을 치고, 스크럼 짜는 것도 하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그 생각이 굳어지면서 ‘하지 말자’고 최종 지시했습니다.”

“‘비화폰 삭제하면 증거인멸 우려’ 김성훈에 보고했더니 당장 갈아버리라 했다”


이날 법정에는 경호처 기술정보과 소속 박모씨도 증인으로 나왔다. 박씨는 김 전 처장으로부터 ‘계엄에 관여한 군사령관 3명의 비화폰 통화내역을 지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씨는 이런 지시가 위법하다고 생각해 경호처 내부 법무관 등에게 문의했는데 “이거 큰일난다, 무조건 증거인멸에 걸린다”는 답을 받았다. 이후 IT 담당 부서 소속인 다른 직원과 함께 ‘형법 155조 증거인멸 소지’ 등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김 전 차장에게 제출했다고 한다.

박씨는 이런 내용을 보고받은 김 전 차장이 “화를 내면서 (보고서를) 집어 던졌다”면서 “증거 남기려고 이런 걸 만들었냐면서 당장 갈아버리고 문서를 지우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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