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가려 써야 하는 시합(試合)
웬만한 스포츠, 공적(公的)인 게임에는 경기(競技)가 적절하다. 그렇다고 친구끼리 나눌 만한 대화인 "우리 달리기 경기할까?" 같은 사례에서까지 시합을 '경기'로 치환시키긴 뜨악하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 가려 써야 하는 시합(試合)
웬만한 스포츠, 공적(公的)인 게임에는 경기(競技)가 적절하다. 그렇다고 친구끼리 나눌 만한 대화인 "우리 달리기 경기할까?" 같은 사례에서까지 시합을 '경기'로 치환시키긴 뜨악하다.
시합은 사적(私的)인 겨루기에만 제한적으로 써야 바람직하다. 순도 높은 일본말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기들 말로 소리 나는 원래의 일본어에다 그에 걸맞은 한자를 끼워 넣는 전통이 있다.
그러니까 시합(試合/仕合)은 본디 있던 한자 단어가 아니고, '시아이'(しあい)란 히라가나 일본말을 한자식으로 만든 조어(造語)인 셈이다.
이게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우리가 오늘날까지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대안은 시합을 벌이면서 앞에다 장치를 걸어놓는 거다.
"우리 누가 빠른가, 달리기 해볼까?" 하든가, 혹은 '겨루기'를 활용하기. "우리 달리기로 겨뤄볼까?"
물론 일본말로 경기(競技)도 있다. '교오기'(きょうぎ)다. 이건 경기(競技)가 먼저인 걸 받은 거다. 그래서 시합보다 질적으로 순하다.
◇ '-째/-번째'의 용법
우선 첫째/둘째/셋째/넷째가 맞는다. '두째' '세째' '네째'로 아직 많이 틀린다. 과거에는 첫째/둘째는 수를 세는 기수(基數)/양수(量數)라 하고, 첫 번째, 두 번째 등은 순서/차례를 나타내는 서수(序數)라고 배웠다. 이 둘을 엄격히 구분했다.
가령 둘째 마누라는 첫째 마누라가 엄연히 있는 상태이고, 두 번째 마누라는 상처나 이별 등 이후 얻은 새 마누라다.
바로 셈과 차례의 묘미였다. 그러나 이젠 둘째/두 번째 다 통용된다.
오히려 차례/순서에 첫째/둘째를 더 많이 쓴다. 둘째 줄 학생/두 번째 줄 학생은 같다. 둘째 줄이 더 편하고 보편화돼있다.
이제 '-번째'는 횟수에만 특화돼 있다. '세 번째 방문이다/네 번째 도전이다'는 되지만, '셋째 방문이다/넷째 도전이다'는 불가능하다.
중장년들에게는 '-째번'의 추억이 있다. '첫째번 시험은 잘 보고, 둘 째번 시험은 망쳤다'로 많이들 했었다. '-째번'은 과거에는 표준어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위에서 '두째'는 틀린다고 했으나, 예외가 있다. 다른 수의 뒤에 올 때다. 한두째/열두째/스물두째/서른두째 등이다.
이유는 바로 편하고 잘 들리는 발음 요소 때문이며 이럴 땐 심지어 한 단어로 쳐줘 붙여 쓴다.
◇ 아쉬운 문해력
요즘 이런 경우를 가끔 본다. '-줄'을 써야 할 곳에 '-지'를 쓰는 것이다. 의존 명사 '-줄'은 방법, 셈속 따위를 나타낸다.
'외국인 며느리는 밥을 지을 줄 모른다/그가 로또에 맞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문장이 있다.
'-줄'을 쓸 자리에 '-지'를 쓸 수는 없다. '-지'는 추측/의문을 나타내는 문맥에 쓰인다.
'오빠는 지금쯤 운동을 할지 몰라/누나가 다이어트하는지 날씬해졌어'라는 문장도 있다.
한자를 쓸 줄은 모르더라도 '-줄'을 쓸 자리와 '-지'를 쓸 자리 정도는 알아야 할 일이다.
◇ 맞히다/맞추다
'맞히다'를 써야 할 곳에 '맞추다'를 넣어 틀리는 게 대부분이다. '맞히다'는 '맞다'의 사역(使役)이다. '정답/과녁' 등은 맞히는 것이다.
'맞추다'는 비교해 보는 거다. 짝을 맞추거나 양복을 맞출 때 쓰면 된다.(신체와 옷감)
'치르다/치루다'도 있다. '치르다'만 맞고 '치루다'는 틀린 표현이다. '치루다'란 단어는 아예 없다!
끝으로 '추스르다/추스리다'를 살펴보자.
'추스르다'가 맞으므로 활용은 '추슬러'가 된다. '추스려'가 아니다. 심지어 '추시려'를 쓰는 자도 있다. 비슷한 사례로 '오르다->올라', '거스르다->거슬러', '머무르다->머물러'를 떠올리면 유리하다. 이른바 '르' 변칙(불규칙)이란 거다.
◇ '되'와 '돼'
'되' 다음에 모음어미 '어/었/어서' 등이 오면 '되어/되었/되어서'가 된다.
이를 축약하면 '돼/됐/돼서'로 바뀐다. 자음어미가 오면 '되고/되지/되면' 등으로 활용된다. 보통 '돼'를 써야 할 곳에 '되'를 써 틀리는 게 대부분이다.
'안 돼'를 '안 되'로 한다거나 '돼야'를 '되야'로 하는 경우다.
요령은 '어'를 넣어서 무리가 없고 부드럽게 발음되면 '되'가 아닌 '돼'가 들어갈 자리다. 안 되어야->안 돼야.
'안 돼'에 '어'를 또 넣는다면 '안 돼어'가 돼 어색하지 않겠는가?
'안 되지'는 '어'를 보태면 '되어지'가 되니까 이상해져서 '어'가 필요 없고 말이다. '안돼지'는 그래서 탈락이다. 그 이전에 '안 돼/안 되지' 등을 평소 명료하게 발음하는 게 습관화된 사람은 표기도 좀처럼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돼'는 입을 의식적으로라도 크게, '되'는 입 모양을 가볍고 동그랗게 할 일이다.
◇ 언뜻 보기에 비슷한 '귀뜸'과 '귀띔'
'귀뜸'이 아니라 '귀띔'이다. 그리고 [귀띰]으로 소리난다. 평소 [귀뜸]으로 발음했기에 이런 비극이 벌어졌음 직하다. 발음이 [ㅣ]인데 표기 형태는 [ㅢ]가 남은 형태가 더러 있다.
대개는 맨앞에서 벌어진다.
'희다'[히다], '희망'[히망], '띄다'[띠다], '틔다'[티다], '늴리리야'[닐리리야] 등이 유사한 사례다.
사람 사이가 그렇듯 글에도 어울리는 말, 짝이 맞는 말이 있다. 이걸 거스르면 문장이 어색하고 이상해진다. '언뜻 보기엔' 다음에는 '비슷하다'나 '차이가 없다' 등이 와야 적절하다.
언뜻 보면 대개 차이점을 알 수 없다. 잘 관찰해야 다른 게 보인다.
◇ 감찰을 왜 길게 하는지
'감찰'의 발음은 [감찰]로 짧다. 일부 앵커/기자들이 대충 '감:'(感)만 믿고 [감:찰]로 소리 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감(監)이 들어있는 단어는 모두 짧다.
감사(監査)/감시(監視)/감독(監督)/감수(監修) 등이 그렇다. 비슷한 글자 감(鑑)도 역시 짧다. 감정(鑑定)/감상(鑑賞)이 해당한다.
이외에도 단음(短音)으로 소리 나는 감은 감수(甘受)/감색(紺色)/감내(堪耐)/감당(堪當)/감투(벼슬)/감귤(柑橘) 등이 있다.
반면 긴 감, 즉 장음(長音)으로 발음하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우선 '감:'(感)을 들 수 있다. 감:정(感情)/감:사(感謝)/감:흥(感興)이다. '줄다'의 의미 '감:'(減)도 길다. 감:축(減縮)/감:세(減稅)/감:점(減點)이 옳다.
그 밖의 긴 발음 '감:'으로는 (먹는)감:[枾]/감:안(勘案)/감:행(敢行)/감:히(敢-)/감:돌다 등을 기억하자.
사실상 골 아프다.
언제 그걸 다 외워야 할까. 그러나 어려워 보여도 막상 기억하고 구사해보면 소위 있어(?) 뵌다. 내 읽기와 말하기의 리듬감과 전달력, 아름다움의 격을 높인다. 세련되고 근사해진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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