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와이어로 매달린 박은선의 신작 '무한기둥-확산'. 대리석 속을 파내 그 안에 LED 조명을 설치해 반짝거린다. 가나아트센터 |
서울 성수동 무신사 사옥 앞에 높이 4m짜리 돌기둥이 설치됐다. 정육면체와 구 형태가 교차하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기다란 기둥으로 군데군데 균열이 가 있다. 각각의 돌은 검은색과 녹색 화강석이 스트라이프처럼 교차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사랑한 한국 조각가 박은선(60)의 '무한기둥'이다. 작가는 "내 작품에서 구는 여성을, 사각형은 남성을 상징하는데 한 작품에서 남녀가 함께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금의환향의 화룡점정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치유의 공간'이다. 국내 대형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대표작 '무한 기둥'부터 신작 '생성·진화'까지 조각 22점·회화 19점을 선보인다.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3년 전 그의 작업장이 위치한 이탈리아 피에트라 산타를 방문해 전시가 성사됐다는 설명이다.
'무한 기둥'은 끝없는 상승과 욕망을 상징하면서도 위태로운 듯 불안한 내면을 보여준다. 두 색상의 대리석이나 화강암을 잘라 교대로 쌓은 것으로 인간의 이중적인 성격과 내면의 투쟁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저도 종일 작업장에 있으면 두 가지 성격이 치고 싸운다"며 "작업실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과 작업만 하고 싶은 마음, 또 유명해지고 싶어 작품을 화려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과 순수하게 작업만 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고 고백했다.
그의 삶 자체가 생존 투쟁이었다. 경희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1993년 도착한 카라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작업을 계속했다. 이집트 문명에서 미켈란젤로까지 수천 년간 계속된 무수한 돌 작업도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고전적인 조각의 방식은 돌 덩어리에서 형태를 찾는 것이다. 작가는 "아무리 잘해도 누구의 것 같고, 너무 화가 나서 망치로 돌을 깼다"며 "그 깨진 조각들이 무척 아름답더라. 필요한 것만 맞춰 보았다"고 말했다. '깨뜨리고 접합하는' 그만의 독자적인 기법을 찾은 것이다. 그에게 돌 조각 사이에 난 균열은 단절이 아닌 '숨통'이자 '치유의 공간'이다. 깨진 부분을 통해 빛과 공기가 스며들며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석공처럼 수십 년간 돌을 쪼았더니 돌의 성격을 알게 됐다.
"돌도 사람처럼 다 성격이 있어요. 돌이 원하는 길을 따라 작업하게 됐죠."
갤러리 2층에 전시된 '무한 기둥-확산'은 돌을 구형으로 만들어 쌓아 올린 작품이다. 돌 속을 파내 8㎜ 두께로 얇게 만든 다음 그 안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설치해 돌이 가진 자연의 빛을 선명하게 했다.
다른 모든 재료를 제쳐두고, 그는 왜 돌에 매료된 걸까.
"자연 그대로이자 영원하잖아요. 야외 전시는 화강석을 주로 쓰는데, 이집트 돌 유물이 다 화강석입니다. 3000년이 지났지만 그대로죠."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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