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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의 무비홀릭]변태 시대에 변태 영화는 살아남을까?

동아일보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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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의 무비홀릭]변태 시대에 변태 영화는 살아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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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니콜 키드먼(왼쪽) 주연의 영화 ‘베이비걸’.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배우 니콜 키드먼(왼쪽) 주연의 영화 ‘베이비걸’.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1] 올해로 58세인 니콜 키드먼이 변태적인 섹스에 탐닉하는 영화 ‘베이비걸’(청소년 관람불가)이 개봉했단 소식을 듣고 눈썹 휘날리게 뛰어가 보았어요. 자상한 예술가 남편, 두 딸과 함께 부유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룬 로봇 자동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로미(키드먼 분)에겐 남모를 비밀이 있어요. 19년 결혼생활 동안 내색한 적 없지만, 그녀는 한 번도 남편과의 성관계에서 만족한 적이 없었죠. 그녀가 갈망하는 건, 상대가 시키는 대로 노예처럼 움직이며 지배받는 마조히즘이었어요.

이튿날, 출근하던 그녀는 길거리에서 목줄이 풀려 날뛰는 개를 단박에 통제해버리는 잘생기고 몸 좋은 청년 새뮤얼(해리스 디킨슨 분)과 우연히 마주쳐요. 순간 그녀는 ‘아, 저 남자가 나를 저 개처럼 통제하고 마구 다뤄주면 좋겠어’ 하는 저질스러운 상상을 하며 백주대낮에 몸을 움찔움찔하죠. 아니나 다를까. 새뮤얼이 그녀의 회사 인턴으로 들어오는,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이어지고, 그녀는 그과 거역할 수 없는 일탈에 빠져들어요. 새뮤얼이 부르는 싸구려 호텔방으로 득달 같이 달려가 네 ‘발’로 엎드린 채 청년의 손바닥에 놓인 사탕을 핥아먹고, 개처럼 킁킁대며 남자의 구두 냄새를 맡지요.

[2] 이 영화는 2025년의 관객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에요. 변태엔 트렌드가 없겠지만, 변태를 다루는 영화엔 트렌드가 있으니까요. 인공지능(AI)이니 로봇이니 하는 설정만 빼면, ‘벌레 먹은 장미’나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같은 쌍팔년도 국산 성애영화를 연상케 하는 철지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어요. 남성 중심 경쟁사회에서 여성들의 롤 모델로 떠오른 여성 CEO로서 그녀가 품는 고독과 위기감이 일탈적 섹스로 탈출구를 찾으려 한다든지, 조직을 지배해야 하는 리더로서의 스트레스가 무의식 속에선 지배당하고픈 비틀린 욕망으로 샘솟았다든지 등등의 그럴듯하고 현대적인 설득기제가 전혀 없으니까요. 프로페셔널로서 일하진 않고 오직 섹스에만 골몰하는 키드먼은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이 아닌 취약점이에요. 변태 영화 계보로 볼 때 그나마 신선한 점이라면, 그녀의 마조히즘 성향이 어린 시절 겪은 특정한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탓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편견 없는 설정 정도죠.

매혹적인 중년 여성이 착한 남편 두고 종마 같은 외간 남자와 바람난다는 내용이라면, 이 영화를 땅속에 묻어버릴 만큼 탁월한 고전들이 너무도 많이 떠오르는 게 문제죠. 우아한 수준으론 이미숙 주연의 ‘정사’(1998년)가 있고, 격조 있는 수준으론 다이언 레인 주연의 ‘언페이스풀’(2002년)이 있으며, 제정신 아닌 수준으론 전도연 주연의 ‘해피 엔드’(1999년)가 있죠.

젠슨 황이 깐부치킨에 짠 나타나는 시대예요. 주식도, 채권도, 달러도, 금도, 집도, 코인도 가격이 일제히 오르는 전대미문의 돌아버릴(좋은 말로는 다이내믹한) 시대라고요. 오직 자극적인 것만이 살아남아요. 야동이 범람하니, 영화 속 ‘변태’의 역치(閾値)는 날로 높아져가죠. 이 영화 정도의 변태로, 변태가 뉴노멀인 이 세상에서, 변태로 인정이나 받겠어요?

[3] 이런 의미에서, 얼마 전 저는 진짜로 변태적인 영화를 보았어요. 올 1월 개봉한 ‘총을 든 스님’(전체 관람가)이란 부탄 영화죠. 2006년 부탄 왕국이 배경.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도착한 이곳에선 역사상 첫 번째 선거가 시작될 예정이죠. 하지만 부탄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수백 년 왕과 신에 의지해 오순도순 살아왔건만, 이놈의 ‘신성한’ 투표권 탓에 형제처럼 지내던 마을사람들이 서로 편을 나누고 미워하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빌어먹을 민주주의…. 이런 혼란을 틈타 미국인 총기상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얻으려 부탄에 잠입해요. 미국 남북전쟁 때 쓰였던 소총 하나가 부탄 시골마을로 흘러들어왔단 소문을 들은 거죠. 골동품으로서 엄청난 희소가치를 지닌 소총을 세상 물정 모르는 마을사람들로부터 헐값에 사려는 심산. 소총을 가진 부탄 농부에게 총기상은 시세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7만5000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부탄에선 평생 먹고살 큰돈이죠. 그러자 놀랍게도 부탄 농부는, 단칼에 거절해요. 이유는? “다이아몬드도 아닌데, 금액이 너무 높아요. 마음이 불편합니다.” 결국 부탄 농부는 소총을 파는 대신 마을 수도원에 기증한 뒤 스님으로부터 빈랑나무 열매 한줌을 대가로 받고는 감동에 사무치지요.


서양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사회적 가치란 믿음에 따라 언제든 전복될 수 있음을 풍자하는 이 영화야말로 아이러니하게도 신선하고 자극적이죠. 맞아요. 미쳐 돌아가는 요즘 세상엔, 순수가 오히려 변태입니다.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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