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경기 과천 정부과청청사 법무부에 출근하며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관해 취재진과 문답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0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약 20분간 약식회견 형식으로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따른 쟁점을 설명했다. 특히 성남도시개발공사의 민사소송으로 대장동 개발에 따른 피해액을 환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방식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민사로 피해액 환수 가능?
정 장관은 검찰의 항소 포기로 범죄수익의 추징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비판을 두고 “이 사건 피해자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며 별도의 소송을 통해 대장동 개발 비리에 따른 피해액을 환수할 수 있다고 했다.
성남도개공은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과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 등을 상대로 5억1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당시 성남도개공은 손해액 중 일부만 우선 청구했고 향후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금액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현행 부패재산몰수법에선 범죄 피해자가 자력으로 피해 회복이 어려울 경우, 검찰이 피해재산을 몰수·추징한 뒤 이를 피해자에게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대장동 일당 1심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판결에서 이 사건이 부패재산몰수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여 범죄 피해 재산을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신속한 피해 회복을 도모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를 통해 범죄수익을 환수한 뒤 성남도개공의 피해를 회복해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형사사건에서는 강제수사를 통해 피해를 특정하고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민사 손해배상은 형사재판 결과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검찰은 대장동 일당이 배임 행위로 모두 7886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며 전액 추징을 요구했으나 1심은 배임 행위에 따른 손해액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피고인들에게 선고된 추징금 규모는 473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범죄수익 전체에 대한 몰수가 가능한 이해충돌방지법에 무죄가 선고되고 항소 포기로 이 부분이 확정되면서 피해액 환수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단,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하며 지적한 것처럼 배임 혐의와 쟁점이 겹치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를 검찰이 별건으로 과잉 수사한 문제점이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형사적으로 추징은 모든 이익을 박탈하는 거고 민사는 손해를 메워달라며 나의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며 “형사적으로 추징도 되지 않은 것을 민사 소송으로 피해를 메운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수익에 대해 국가가 추징할 수 있으면 하는 게 맞다. 나중에 민사로 이걸 교정한다는 건 맞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양형 충분하니 항소 포기?
정 장관은 대장동 1심 선고에서 법원이 검찰의 구형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며 “원론적으로 성공한 수사, 성공한 재판이었다”고 했다. 형량을 충분히 선고받았으니 검찰의 항소 포기가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 구형보다 형량이 늘어난 이는 대장동 일당 5명 중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과 정민용 전 성남도개공 전략사업실장 2명이다. 정 장관은 이날 “유동규가 수사 협조 대가로 양형거래한 의혹이 제기됐고 당시 검사가 24시간이나 면담하며 오히려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유 전 본부장이 엄벌을 받았으니 항소 포기가 타당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검찰청의 ‘검사 구형 및 상소 등에 관한 업무 처리 지침’을 보면, 선고 형량만으로 항소 여부를 결정하진 않는다. ‘양형부당 항소’와 ‘무죄 등 사건의 상소’로 항소 규정을 나눠,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지 않았거나 원심 판결의 번복 가능성, 상소 실익 등을 면밀히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또 1심에선 참고할 대법원 판례가 없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해충돌방지법 위반과 428억원 뇌물 약속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이 대통령·정진상 재판에 어떤 영향?
법조계에선 ‘대장동 이익 428억원 약정 약속’ 혐의(뇌물)에 무죄가 확정되면서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의 형사재판과 현재 중단돼 있는 이 대통령 공판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 정 전 실장은 2021년 2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유동규 전 본부장 등과 배당이익 428억원을 뇌물로 받기로 한 혐의(부정처사 후 수뢰)로 별도의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의 항소 포기로 1심보다 중형을 선고받을 부담을 덜게 된 대장동 일당과 관련 참고인들이 새로운 증언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대장동 일당의 일원인 남욱 변호사는 지난 7일 정 전 실장 재판에 출석해 “정일권 당시 부장검사가 ‘배를 가르겠다’고 했다”고 증언했지만 정 부장검사는 이날 “검사의 조사 과정을 ’병을 고치는 의사의 치료과정’에 비유하면서 꼭 필요한 환부만 신속하게 도려내는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며 “부당한 압력으로 느낄 만한 언행을 한 바는 없다”고 반박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