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로구 종묘를 찾아 최근 서울시의 세운4지구 재개발 계획에 대한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이날 허민 국가유산청장(오른쪽),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왼쪽)이 함께 방문했다. 청사사진기자단 |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서울시 종묘 일대를 방문해 고층 빌딩 개발 사업을 두고 “국익과 국부를 해치는 근시안적 단견”이라고 비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 중 무엇이 근시안적 단견인지 공개토론을 제안한다”며 즉각 반박했다. 종묘 인근 고층 빌딩 개발 사업을 두고 정부와 서울시의 수장이 정면충돌한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장 수성을 노리는 오 시장과 김 총리 등 여권 후보군의 전초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 총리는 이날 허민 국가유산청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 종묘 일대 현장 점검에 나섰다. 김 총리는 정전 앞에서 종묘 역사에 관한 설명을 들은 후 “종묘 코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종묘에서 보는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총리는 또 “(종묘는) 대한민국 국민을 넘어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하고), 종묘 인근에 개발하더라도 국민적인 토론을 거쳐야 되는 문제”라며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한 시기의 시정이 그렇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장 방문에 앞서 김 총리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종묘가 수난”이라며 “상상도 못 했던 김건희씨의 망동이 드러나더니, 이제는 서울시가 코앞에 초고층 개발을 하겠다고 한다”고 밝혔다. 김 여사가 지난해 9월 종묘 망묘루에서 비공개 차담회를 한 사실을 거론하며 서울시의 개발 정책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 상향을 골자로 한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이에 따라 종묘 맞은편인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가 당초 종로 변 55m, 청계천 변 71.9m에서 종로 변 101m, 청계천 변 145m로 변경되면서 종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김 총리는 “기존 계획보다 두 배 높게 짓겠다는 서울시의 발상은 세계유산특별법이 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고, K-관광 부흥에 역행하여 국익과 국부를 해치는 근시안적인 단견이 될 수 있다”며 “최근 한강버스 추진 과정에서 물의를 빚은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할 것”이라고 적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라운지에서 열린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설계 공모 시상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오 시장도 반격에 나섰다. 오 시장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오늘 김민석 총리께서 직접 종묘를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신다는 보도를 접했다. 가신 김에 종묘만 보고 올 게 아니라 세운상가 일대를 모두 둘러보시기를 권한다”며 “세계인이 찾는 종묘 앞에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도시의 흉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온당한 일입니까”라고 적었다.
오 시장은 “종묘를 가로막는 고층빌딩 숲이라는 주장 또한 왜곡된 정치 프레임”이라며 “중앙정부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서울시를 매도하고 있어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는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서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국무총리와 공개토론을 제안한다”고 했다.
정 구청장도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종묘 일대는 서울이 세계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공공자산”이라며 “오세훈 시장님께서 지금의 종묘 일대 세운4구역 재개발을 강행한다면, 개발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공성과 일관성을 잃은 서울시 행정의 실패로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사람의 고집으로, 서울시가 지금까지 얻은 신뢰와 대한민국의 품격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오 시장께선 지금이라도 유네스코가 권고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절차를 정식으로 밟고, 전문가와 시민 등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고 적었다.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종묘 앞에 초고층 빌딩 허용은 개발을 빙자한 역사 파괴”라며 “조선왕조 500년의 숨결이 깃든 서울의 품격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개발과 보존의 조화’라는 현대 도시정책의 기본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이자 종묘 전체를 고층 빌딩의 그늘로 덮으려는 해괴망측한 발상”이라고 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원래보다 20층 더 올리자고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훼손하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5선을 꿈꾸는 오 시장의 오발탄, 이제 멈춰야 한다”고 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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