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음악·애니 ‘오타쿠’ 엄하늘 감독 “BL 아닌 성장 영화로 봐주길” [인터뷰]

헤럴드경제 손미정
원문보기

음악·애니 ‘오타쿠’ 엄하늘 감독 “BL 아닌 성장 영화로 봐주길” [인터뷰]

서울맑음 / -3.9 °
5일 개봉 ‘너와 나의 5분’ 메가폰
“시나리오 쓴지 14년 만에 개봉”
“日문화 즐기던 학창시절 녹여내”
[트리플픽쳐스 제공]

[트리플픽쳐스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지난 5일 ‘피터팬의 꿈’, ‘찾을 수 없습니다’ 등에서 특유의 서정적 감성을 보여준 엄하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의 5분’이 개봉했다. 지난해 제천국제영화제에서 최초 상영한 이후 1년이 넘는 기다림 끝에 찾아온 관객과의 만남이다. 제작도 힘들지만 극장에 걸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현실에서, 개봉이라는 어려운 산을 넘은 ‘너와 나의 5분’은 개봉 첫 주말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안착하며 순항 중이다.

영화는 좋아하는 음악과 비밀을 공유하던 전학생 경환(심현서 분)과 반장 재민(현우석 분) 두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J-팝을 주요 소재로 활용한 국내 첫 독립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찍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완성을 해서 결국 공개까지 하게 돼 기뻐요. 독립 영화들이 개봉을 못 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아진 상황이라 개봉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두고 엄 감독을 서울 중구 모처에서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의 배경부터 캐릭터, 서사까지 곳곳에 녹아있는 엄 감독의 경험과 추억담을 듣고 있자니 짧지 않은 인터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트리플픽쳐스 제공]



엄 감독이 영화를 처음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쓴 것이 2011년이었다. J-팝을 소재로 음악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써낸 단편 시나리오는 이후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수업 과정에서 장편으로 발전했다. 시나리오가 세상에 태어나고 영화로 개봉하기까지 꼭 14년의 세월이 걸렸다.

엄 감독은 “엔딩을 구상한 친구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저절로 앞의 내용들이 떠올랐다”면서 “단편 시나리오에서는 경환과 재민이 친해지는 과정이나 감정이 드러나는 대사가 없는 상태였는데, 그런 부분들을 채워 넣으며 장편으로 완성해 나갔다”고 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경환은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학급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된다. 2001년 대구, 일본 만화와 J-팝을 좋아하는 소년들의 이야기는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오랜 시간 ‘오타쿠’(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에 깊이 빠진 사람)의 길을 걸어왔다”는 감독의 이야기와 정확히 겹친다. 영화 속 경환을 향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처럼, 엄 감독이 경험한 2001년은 오타쿠에게 절대 따뜻하지만은 않은 시기였다.

“2001년은 정작 개방적인 듯 개방적이지 않은 기류가 지배적인 시절이었어요. 제가 오타쿠로서 애니 활동을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1990년대 후반에 일본 대중 문화가 전면 개방됐지만, 막상 일본 음악을 들으면 그것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거든요. 거기에 대구는 보수적인 도시잖아요. 변화에 열려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대라고 생각했어요.”

[트리플픽쳐스 제공]

[트리플픽쳐스 제공]



경환과 재민은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둘만의 5분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조금씩 재민을 향한 마음을 키워가는 경환, 그리고 경환의 비밀을 알게 된 재민의 반응, 여기에 어른이 된 경환이 이 모든 것을 추억하는 엔딩까지. 영화는 ‘오타쿠’에 ‘성소수자’란 설정까지 더한 주인공을 유독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게 만들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저항하고 성장하는 경환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아낸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감정에 관한 이야기는 긴 시간 조금씩 살을 붙여가며 아련하고 애틋하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10대 소년의 성장기로 완성됐다.

“어른이 된 경환에게 재민과의 추억은 아쉽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면서도, 웃어넘길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이 들게 만드는 기억일 것 같았어요. 경환이라는 캐릭터가 2001년을 생각했을 때 힘든 것만 있지 않았으면 한다는 생각이 컸달까요. 물론 영화를 보면서 BL(남성 간의 로맨스)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한데, 그것보다는 퀴어 영화(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영화)로 봐주시길, 더 나아가서 퀴어 영화보다는 성장 영화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는 재민을 향한 경환의 감정을 따라가지만, 그에 대한 재민의 마음은 명확히 비추지 않는다. 엄 감독은 “경환과 재민의 사랑이 아닌 경환의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떡밥은 뿌리긴 했지만, 재민이란 캐릭터가 어떤 감정이었는지에 대한 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며 웃었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트리플픽쳐스 제공]



영화 전반에는 일본 밴드 글로브(Globe)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들 음악은 왠지 시리고도 포근한 겨울을 떠올리게 만드는 서정적 감성을 배가 시키기도 하고, 가끔 서사와 꼭 맞아떨어지는 가사로 주인공들의 감정을 대변하기도 한다. 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평소 알고만 있던 글로브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들었다고 했다.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점차 음악은 캐릭터의 감정과 장면에 녹아들었다.

“9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작곡가 중에 코무로 테츠야란 사람이 있어요. 아무로 나미에가 1년 넘게 1위를 할 수 있도록 프로듀싱한 작곡가죠. 그가 멤버로 있는 그룹이 글로브인데, 20대 때 이들의 ‘디파쳐스(DEPARTURES)’를 듣고 너무 좋아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 이후에 시나리오의 결말을 써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을 때 자연스레 글로브의 음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엄 감독은 여러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하정우의 연출작인 영화 ‘로비’에서 호식 역으로 분했다. 한예종 재학 시절 우연한 기회로 선배의 영화에 참여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여전히 엄 감독의 정체성은 배우보다 감독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그는 “할 수 있는 역할이면 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영화 ‘로비’에서 창욱(하정우)의 사촌 동생 호식을 분한 엄하늘 감독 [쇼박스 제공]

영화 ‘로비’에서 창욱(하정우)의 사촌 동생 호식을 분한 엄하늘 감독 [쇼박스 제공]



“얼떨결에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 계기로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작품에 출연했던 것 같아요. 영화 ‘로비’ 때도 큰 생각 없이 출연한다고 말했는데, 당초에 2회차였던 촬영 분량이 점점 늘어나서 20회차까지 갔어요. 당시에 하정우 감독이 ‘하늘이는 얼룩말 같다. 얼룩말은 길들여지지 않는다’면서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하도록 했던 기억이 나요.”

엄 감독은 ‘너와 나의 5분’을 통해 “오랜 시간,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했다”고 했다. 감독으로서 그의 다음 단계는 ‘너와 나의 5분’이 아닌 것들로 향해 있다. 현재 작업 중인 작품들의 장르는 호러와 코미디다. 그는 “이제는 다른 것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완전히 다른 느낌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호러도 좋아하고 B급 코미디도 좋아하거든요. 영화 ‘너와 나의 5분’을 보러 오시는 관객분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재밌게 봐주셨으면 하는 것이에요. 요즘에 재미있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감독으로서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