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업, 포승줄 쏘는 무인기 개발
강도 높은 ‘케블라 섬유’ 재질 끈
범죄자 상·하체 휘감아 포박 효과
고통·부상 유발 없는 비살상 무기
총격범 제압 등 치안 유지는 물론
공중 침투 차단 군사 용도도 가능
강도 높은 ‘케블라 섬유’ 재질 끈
범죄자 상·하체 휘감아 포박 효과
고통·부상 유발 없는 비살상 무기
총격범 제압 등 치안 유지는 물론
공중 침투 차단 군사 용도도 가능
무인기에서 발사된 케블라 섬유 재질의 끈에 남성의 팔다리가 묶여 있다(빨간색 원). 이 때문에 남성은 빠르게 움직이거나 모의 총기를 전방으로 들 수 없다. 랩 테크놀로지스 제공 |
# 손에 모의 총기를 든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대형 창고 안을 배회한다. 그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비행하던 소형 무인기 한 대가 서서히 남성을 향해 전진한다. 약 5m까지 거리를 좁힌 무인기는 돌연 자신의 기체 전방에서 펑펑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발사한다.
‘뭘 쏜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남성 무릎에 이전에 보이지 않던 끈이 친친 감겨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남성이 보폭을 넓히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순간, 무인기는 다음 폭발음을 낸다.
그러자 이번에는 상체까지 끈에 감기며 남성 팔이 몸통과 함께 꽁꽁 묶인다. 포승줄에 묶인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 것이다. 남성은 다리를 움직이지도, 모의 총기를 들어 전방을 겨누지도 못한다. 말 그대로 무력화된 셈이다.
이 장면은 이달 초 미국 기업 랩 테크놀로지스가 자신들이 개발한 치안 유지용 신형 장비를 시험하는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공개한 동영상 일부다. 총을 든 범죄자가 주변을 위협할 때를 가정한 이 시험에서 원격조종 무인기는 고도의 무술이나 첨단 무기를 갖춘 특수 요원이 없는데도 위협 상황을 빠르고 완벽하게 제거했다.
■ 방탄모 재질 섬유로 제압
‘멀린 인터딕터’라는 이름이 붙은 이 무인기의 핵심 장치는 전방을 향해 발사되는 끈이다. 그런데 이 끈은 보통 끈이 아니다. 재질이 ‘케블라 섬유’다. 케블라 섬유는 강도가 매우 높다. 천 형태로 만들면 총알도 막는다. 방탄복이나 방탄 헬멧 제작에 쓰인다.
안전 장갑이나 보호 의류, 항공기 부품, 고강도 밧줄, 현수교 케이블에도 사용된다. 랩 테크놀로지스가 범죄자를 단단히 묶기 위한 용도로 케블라 섬유를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랩 테크놀로지스는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케블라 섬유 재질의 끈에 끈적끈적한 접착 성분을 바른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사람 몸에 끈이 한번 휘감기면 여간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랩 테크놀로지스의 무인기가 발사한 케블라 섬유 때문에 프로펠러가 작동 불능에 빠져 추락한 미상의 무인기 모습. 케블라 섬유를 쏘는 무인기는 군사 용도로도 사용 가능하다. 랩 테크놀로지스 제공 |
이번 무인기가 실제 치안 현장에 투입되면 전에 없던 새로운 비살상 무기가 된다. 하지만 케블라 섬유를 뱉듯이 쏘는 이번 무인기는 비살상 무기 숫자를 하나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재 전 세계 경찰이 보유한 테이저건이나 곤봉, 후추 스프레이 같은 비살상 무기는 상황에 따라 제압 대상에게 고통이나 심각한 부상을 유발할 수 있다. 반면 랩 테크놀로지스 무인기는 그저 몸통을 단단히 옭아매기만 할 뿐 신체를 물리적으로 타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기존 비살상 무기들은 대부분 범죄자에 바짝 접근해 사용해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임무 수행 과정에서 경찰관이 위험해진다. 먼 거리에서 원격조종으로 통제하는 이번 무인기는 그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피할 수 있게 한다.
■ ‘관찰’ 아닌 직접 대응 가능
사실 미국 등에서는 현재도 무인기를 범죄 현장 대응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 기능은 카메라를 통한 ‘관찰’이다. 랩 테크놀로지스는 “학교에 들어온 총격범이 총을 재장전하는 모습을 보고도 무인기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경찰에 정보를 전달하고 기다려야만 한다”고 했다.
반면 케블라 섬유를 쏘는 무인기를 사용하면 범죄자를 제압하기 위한 구체적인 ‘액션’을 취할 수 있다. 이런 무인기를 여러 대 띄우면 범죄자를 쉽게 제압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번 무인기는 공대공 방어 임무에도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랩 테크놀로지스는 보고 있다. 치안은 물론 군사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요 시설을 정찰하거나 공격하는 미상의 무인기를 발견했을 때 공중에서 케블라 섬유를 발사해 프로펠러에 엉겨 붙게 하면 된다. 이러면 바로 추락을 유발할 수 있다.
랩 테크놀로지스는 “화기나 전자전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공중 침투를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무인기에 대응하기 위해 대공포나 방해 전파를 발사하지만 더 낮은 비용으로 대처할 방안이 생긴 것이다. 랩 테크놀로지스는 다음주 해당 무인기를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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