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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곡만 2만 번 연습, "아무도 음을 틀리지 않는, 특수부대 같아"

머니투데이 제천(충북)=김고금평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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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곡만 2만 번 연습, "아무도 음을 틀리지 않는, 특수부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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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뮤지션들의 예술은 단순히 미학적 성취에 국한하지 않는다. 예술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내는 수많은 삶의 단상들은 우리 인생의 단면과 다르지 않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고뇌하고 분노하는 삶의 다양한 감정의 파편 속에서 숭고한 예술의 깊이와 외연도 강렬해진다.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지만, 조금 더 특별한 예술적 성취를 거머쥔 뮤지션들의 흔적을 제2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따라가 봤다.

/사진=FS_11. Pianoforte_1. Stills 1_ⓒPianoforte

/사진=FS_11. Pianoforte_1. Stills 1_ⓒPianoforte



클래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기껏해야 5년마다 한 번 열리거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대회 중 하나라는 정도다. 클래식 음악과 연주에 문외한이라면 이 대회 우승자와 탈락자의 실력 차 또한 가늠하기 어렵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기자 또한 클래식 콩쿠르에 대한 선입견이 문외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쇼팽 콩쿠르에 참가한 이들의 면면을 영화를 통해 확인한 후에야 살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웃음과 눈물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실시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쇼팽 콩쿠르'는 전 세계 수백 명의 피아니스트가 참가 신청을 한 뒤 예선을 치른다. 약 150명 정도가 본선에 진출하면 이후 4차례(1~3차+결선) 고난도 과정을 거치며 1~6위를 결정한다. 가끔 우승자 호명을 둘러싸고 평가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영화는 결과를 조명하는 대신, 오로지 과정에 집중한다.

영화가 비추는 대회는 18회 쇼팽 콩쿠르다. 일반적인 대회는 모름지기 하루만을 위해 수개월, 또는 수년의 연습을 보내기 십상인데, 이 대회는 (본선에 진출한다면) 수많은 연습 시간을 물론, 한 달 내내 경연을 치러야 하는 '고통'을 덤으로 수반한다.

그 과정 곳곳에 드러나는 온갖 감정의 실타래는 형언하기 힘들 정도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피아노 점검과 조율에 나선 참가자들. 예바의 선생님은 오늘도 엄격하다. "더 절제해야 돼.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어."

마르친은 콩쿠르의 대표적인 피아노 두 대 소리를 두들겨보고 잠시 고민한다. "가와이(KAWAI)는 편한데 소리가 별로이고, 스타인웨이(STEINWAY)는 소리는 좋은데 낯설어." 대기실 풍경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미셸은 "21일간 경쟁에 돌입하는 시간들이 너무 긴장의 연속"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FS_11. Pianoforte_2. Stills 3_ⓒPianoforte

/사진=FS_11. Pianoforte_2. Stills 3_ⓒPianoforte



"우리는 스스로 만든 악과 싸워야 한다.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음악엔 경쟁이 없다." 예선 참가자들의 다짐은 음악의 가장 본질적인 정의를 일깨우면서 앞으로 펼쳐질 경쟁의 숨 막히는 혈전을 예고한다.

2라운드 이후 참가자들의 각양각색도 흥미롭다. 진출자들은 "나 메탈리카도 연주할 줄 알아"하며 헤비메탈 곡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탈락자는 바로 공항에 도착하는데, 그곳에 놓인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그 압도적인 연주에 청중이 하나둘 모여들고 저마다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그는 과연 탈락자가 맞을까.

아직 2라운드. 하지만 진출자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정말 아무도 틀리는 음이 없다. 다들 CIA 요원이나 해병대 특수부대 같다. 특별한 기계들 같다고 할까?"


2라운드에 진출한 46명은 그간 어떻게 연습하고 감정을 다스렸을까. "이 주제로 2만 번은 친 것 같다. 오죽했으면 개가 내 연주에 찬물을 끼얹는 악몽까지 꿨을까."

대만에서 온 한 참가자는 19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베트남 피아니스트 당타이선 공연을 보기 위해 20시간 넘게 기차를 탔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선생님한테 교습을 받으려고 왕복 30시간씩 이동하는 것도 주요 일상의 하나다. 그 아버지가 이런 말로 어린 연주자 아들을 다독인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걸으라."

본격적인 라운드를 마친 참가자들은 저마다 후회 한 움큼씩 안고 무대에서 내려온다.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균형감을 못 살렸다." "손이 엉뚱한 위치에 가 있더라. 다행히 화성을 잊지 않아 바로 제자리를 찾았지만." "왜 연주에 스토리를 얘기해야 할까." 예바 선생님은 다시 훈계를 잊지 않는다. "손가락이 아닌 손 전체를 쓰라고. 그래야 소리가 4배는 커져."


이미 최고의 기량에 오른 연주자들은 선생님들 눈에 여전히 '안타까운 연습생'처럼 비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주를 마치지 못한 참가자들은 감정이 흔들리며 어린애처럼 마냥 울기도 한다.

/사진=FS_11. Pianoforte_5. Poster

/사진=FS_11. Pianoforte_5. Poster



이제 결선. 진출자 12명은 더 이상 누구의 '지시'도 '충고'도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만 남았을 뿐이다. 결선은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여서 모든 참가자가 피아노 뒤에서 동행하는 오케스트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그렇게 속삭이고 질주하며 뻗어가는 선율은 그야말로 장관이자 감동이다.

이 결선 무대를 보면 참가자도 관객도, 그리고 영화 시청자도 모두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는 장면과 수시로 마주한다. 마치 한 달간 그 어렵고 지루하던 나날을 같이 이겨낸 사람처럼, 아니 마음 한구석에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선율의 자투리를 꺼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기어이 맞추려는 인간의 의지를 증명하려는 것 같다.

모두의 기대를 받았던 몇몇 참가자가 입상하지 못하자,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대회는 생각보다 냉정하고 혹독하다. "울어도 돼. 대신 카메라 앞에선 울음을 멈추고. 앞으로 사흘은 더 힘들거야."(예바 선생님)

그들은 여기서 가장 큰 밑바닥의 감정을 느꼈을 테지만,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연주가 지금껏 관심받고 사랑받고 존중받는 이유다.

제천(충북)=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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