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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몸값 책정불가…이창동의 불씨, 할리우드의 불꽃이 되다[씨네블루]

매일경제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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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몸값 책정불가…이창동의 불씨, 할리우드의 불꽃이 되다[씨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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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에서 ‘하이랜더’까지…전종서, 얼굴보다 결로 기억되는 배우


‘발레리나’ 전종서 스틸. 사진 I 넷플릭스

‘발레리나’ 전종서 스틸. 사진 I 넷플릭스


전종서의 ‘몸값’은 이제 숫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창동의 불씨로 시작된 이 배우의 여정이, 어느덧 할리우드의 한복판에서 폭발하고 있다. ‘버닝’의 열정, ‘콜’의 광기, ‘몸값’의 무게, ‘발레리나’의 근육, 그리고 ‘하이랜더’의 칼끝까지. 전종서는 지금, 독보적인 결로 기억되는 배우로 자리매김 했다.

2018년, 거장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한국 영화사에 조용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당대 최고의 스타 유아인, 그 곁엔 낯선 아우라의 신인 전종서의 등장이었다.

대사보단 시선, 감정보다 공기로 인물을 설명하던 그는 데뷔작으로 곧바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세계의 평론가들은 “감정의 이면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라 입을 모아 평했고, 이미 단순한 신예는 아니었다. 불을 지피듯 화면 속에 남은 존재감, 이창동의 불씨다웠다.

“‘버닝’ 때는 촬영하고 집에 와서도 끓어오르는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어요.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확 불을 지피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전종서 인터뷰 中)

이후 영화 ‘콜’에선 광기의 얼굴을 완성했다. 전화선 한 줄로 연결된 두 여성의 대결 속에서 전종서는 웃는 얼굴로 폭력을 말했고,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국내 주요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업계는 확신했다. 이 배우가 단지 ‘특이한 신예’가 아니라, 자신만의 확실한 감정의 결을 가진 연기자라는 사실을. 그의 연기에는 언제나 미세한 균열과 숨결이 공존했다. 완벽한 감정보다는 흔들리는 불안이, 오히려 더 진짜 같았다.


‘버닝’·‘몸값’ 전종서 스틸.

‘버닝’·‘몸값’ 전종서 스틸.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저는 자유로울 수 있어요. (전종서 인터뷰 中)

OTT 시대가 열리자 전종서는 더 강해졌다. 티빙 드라마 ‘몸값’은 폐허 속 인간의 거래를 다룬 작품으로, 그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며 생존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흙먼지 같은 공기, 닫힌 공간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생생했다.

작품은 칸국제시리즈페스티벌과 독일 비평가상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이쯤 되면 그의 이름 앞 ‘몸값’이 단순한 작품명이 아니다. 전종서의 몸값은 시장의 숫자가 아니라, 작품이 견디는 온도다.

거침 없는 액션을 선보인 ‘발레리나’에선 육체와 감정의 근육을 동시에 드러냈다. “어려운 건 싫어요”라고 말했던 그는 칼보다 눈빛이 먼저 베는 배우로 더 강렬해진 존재감을 드러냈다. 감정의 폭이 아니라 결의 강도로 싸우는 그 모습은 이제 액션 장르조차 감정의 언어로 변주할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말’로 번역되지 않는, 몸이 곧 언어가 되는.


영화 ‘콜’ 전종서 스틸.

영화 ‘콜’ 전종서 스틸.


그리고 마침내, 전종서는 할리우드의 정중앙으로 향한다.

할리우드 첫 진출작 ‘모나리자 앤 더 블러드문’에 이어 이번엔 무려 천억 규모의 ‘존 윅’ 시리즈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연출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하이랜더’에 합류한 것.

‘하이랜더’는 1986년 동명 영화에서 시작된 시리즈로, 오랜 시간 팬층을 구축해온 원작 팬덤의 영향력이 크다. 이번 리메이크는 그만큼 높은 기대와 함께 원작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프로젝트로 꼽힌다.


전종서는 헨리 카빌, 마크 러팔로 등 세계적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비밀 종파 ‘워처’의 일원으로 출연을 확정했다.

그렇게 이창동의 불씨는 이제 세계 무대에서 다시 타오른다.

전종서의 연기는 이제 얼굴이 아니라 기류로 작동한다. 감정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이 그 틈을 해석하게 만든다. OTT 시대의 카메라는 배우의 모든 미세한 떨림을 기록한다. 그 앞에서 그는 연기를 ‘보여주는’ 대신 ‘견디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오래 남는다.

그렇게 불씨는 불꽃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이 가장 뜨겁다. ‘버닝’의 불씨에서 시작된 여정은 ‘하이랜더’의 칼끝에서 또 다른 장을 연다. 얼굴보다 결, 연기보다 온도, 감정보다 진동. 그의 연기는 불꽃처럼 번지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침투해 오래 남는다.

세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 그는 보여주기보다 스며들기를 아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이상하게도 단순한 쾌감보다 기묘한 머뭇거림이 남는다. 전종서라는 배우의 강력한 무기는 바로 그 머뭇거림의 기막힌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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