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도 예산안 대통령 시정연설을 위해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해 사전환담장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장동혁 대표(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피의자다. 오는 8일 김건희 특검에 출석해 명태균씨와 대질 조사를 받는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씨의 여론조사 업체가 13차례 비공표 여론조사를 했는데 오세훈 시장의 후원자가 비용 3300만원을 대납했다는 혐의다. 특검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기소될 수도 있다. 기소될 경우 재판이 길어질 수 있다.
오세훈 시장은 내년 6·3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 5선 서울시장이 된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등극한다. 지금도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꽤 높은 수치가 나온다. 만약 실제로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진행 중인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의힘 논리대로라면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유죄가 확정되면 대통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옳은 일일까?
오세훈 시장 말고도 재판 중인 정치인들이 많다. 국회법 위반 혐의로 6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온 나경원 의원 1심 선고는 11월20일로 예정되어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대법원까지 갈 것이다. 확정판결 이전에 대통령 선거를 하고 나경원 의원이 당선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의힘 논리대로라면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유죄가 확정되면 대통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옳은 일일까?
대통령 당선 전에 기소된 사건의 재판을 대통령 재임 기간에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판사들의 손에 대통령의 정치적 목숨을 맡기자는 주장이다. 법치를 빙자한 사법 만능주의다. 국민주권 원리를 무시한 억지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불소추특권 조항이다. 대통령 불소추특권은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 주권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대통령 개인에게 부여한 특권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고 그 권위를 확보하여 국가의 체면과 권위를 유지”(헌법재판소 1995년 판례)하기 위한 제도다. 대통령 신분 보유 기간에만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임기가 끝난 뒤에도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차이가 있다.
불소추특권의 본질상 재직 중에는 형사재판을 하면 안 된다. 불소추특권 때문에 대통령의 일반 범죄는 재직 기간에 공소시효 진행도 멈춘다.
헌법은 건물의 설계도에 비유할 수 있다. 설계도만으로 건물을 완성할 수 없다. 설계의 기본 틀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수많은 장식을 하고 가구를 들여야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설계도에 장식과 가구를 다 표시할 수 없듯이 헌법이 모든 사안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 헌법은 법률로 구체화해야 한다.
‘대통령 재판 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법률로 구체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필요하다. 대통령 재판 중지법이 위헌이라고 생각하는 법률가나 국민은 헌법재판소에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해서 판단을 구하면 된다.
대장동 사건 1심 선고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 재판 재개를 놓고 여야가 격돌했다. 국민의힘이 재판 재개를 주장하자, 민주당은 재판중지법 입법으로 맞섰다. 논란이 자꾸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강훈식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 재판은) 헌법상 당연히 중단되는 것이니 입법이 필요하지 않고 만약 법원이 헌법을 위반해 (재판을) 재개하면 그때 위헌 심판을 제기하고 입법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적절한 결정이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여야 합의로 대통령 재판 중지법을 만드는 것이다. 형사 재판을 받는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은 앞으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불러온 폐해다.
여야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나경원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됐는데도 재판을 계속 진행해 법원에 왔다 갔다 해야 할까? 피선거권 박탈 선고가 나오면 대통령을 그만둬야 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판사들이 갑자기 재판 재개를 결정할 수 있다. 그때 벌어질 혼란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도 대통령 재판 중지법은 필요하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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