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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종묘 옆 고층건물 짓겠다고…서울시, 유네스코 ‘영향평가’ 권고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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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종묘 옆 고층건물 짓겠다고…서울시, 유네스코 ‘영향평가’ 권고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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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종묘. 연합뉴스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종묘. 연합뉴스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인근에 30층 넘는 고층 건물을 허용하는 재개발 계획을 공표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앞서 유네스코는 지난 4월 서울시에 재개발 추진에 앞서 유산영향 평가를 먼저 실시할 것을 요청하는 권고안을 보냈으나 서울시가 이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시보에 고시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는 종로변 55m에서 98.7m로, 청계천변 71.9m에서 141.9m로 각각 상향됐다. 청계천변 기준으로 보면 이전보다 두배 가까이 높아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에 최고 142m 높이의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된 셈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인근 권역에 건물과 시설물을 짓는 등 개발사업을 벌일 경우 사전에 전문가 심의를 통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를 받고 그 결과를 반영해 추진할 것을 권고해왔다. 이번에 고시된 세운재정비촉진계획과 관련해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쪽이 지난 4월7일 우려를 표명하면서 종묘 유산 주변 환경에 대한 영향 평가를 우선 요청하는 권고안을 국가유산청을 경유해 서울시 쪽에 발송한 사실이 확인됐다. 유네스코 센터 쪽은 비공개 외교서한 형식으로 된 이 권고문에서 서울시의 재개발안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며 계획 전체에 대한 유산영향 평가를 실시할 것을 요청했다.



서울시 고시 내용은 이런 유네스코의 권고를 무시한 조처로 해석될 수 있어 유네스코·국가유산청과의 갈등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종묘를 관할하는 국가유산청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서울시가 유네스코 권고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고층 재개발 계획을 고시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전한다”며 “일방적으로 최고 높이를 145m까지 대폭 상향 조정한 변경 고시로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세운4구역은 2004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년 가까이 재개발사업이 추진돼왔다. 종묘에서 약 18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경관 훼손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2009~2014년 여섯차례에 걸쳐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문화유산 심의를 받았다. 서울시 쪽은 높이 120m가 넘는 고층 건물 건립을 허용하는 안 등을 제시했으나 당시 사업시행인가 단계에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에 가로막혔고, 2014년 문화재위 6차 심의에서 옥탑 포함 55~71.9m로 높이 기준이 조건부 가결된 바 있다.



서울시가 고시한 이번 안은 유네스코의 영향평가 권고안을 ‘패싱’했다는 지적뿐 아니라 11년 전 가결된 조건부 기준안과도 큰 차이를 보여 유네스코의 개입과 국가유산청의 법적 대응 조치 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영향평가 권고를 반영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갔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김포 장릉 경관을 가린다는 이유로 공사 중단, 소송 사태를 빚은 인천 검단 신도시 ‘왕릉뷰 아파트’ 공방을 계기로 제정된 법이다. 다만 실시 대상 등 구체적 기준을 담은 시행령이 국토부 등 관련 부처 간 이견으로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재개발 고시를 강행한 배경으로 거론된다.



서울시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세운4구역은 종묘 세계유산지구 바깥에 있고,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지정 범위에서도 약 180m 떨어져 법적으로 영향평가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유산위원회 세계유산분과의 한 위원은 “서울시가 유네스코의 영향평가 권고안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전례 없는 고층 개발계획을 강행 고시한 것”이라며 “오는 13일 열리는 문화유산위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이 부분을 논의하고 심각성을 우려하는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가유산청도 “서울시의 사업 계획을 살핀 뒤 문화유산위, 유네스코 등과 논의해 필요한 조치들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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