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51년 만에 조우한 김환기와 고틀리브… '닮은 듯 다른 추상'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
김환기-아돌프 고틀리브 2인전

아돌프 고틀리브의 '폭발(Burst)' 연작에 해당하는 1972년작 'Red vs Blue'(왼쪽)와 1962년작 'Expanding'이 페이스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모습. 페이스갤러리 서울 제공

수화 김환기(1913∼1974)는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 한국관 커미셔너이자 작가로 참가했다. 명예상을 수상한 김환기는 당시 대상을 수상한 미국의 아돌프 고틀리브(1903∼1974)의 '폭발(Burst)' 연작에 큰 감명을 받고 뉴욕으로 이주를 결심했다. 고틀리브는 한국 예술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김환기의 '점화'에 결정적 영향을 준 인물이다.

둘의 작품을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전시 '추상의 언어, 감성의 우주'가 서울 용산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아돌프&에스더 고틀리브 재단과 환기재단이 협력한 전시다. 같은 해 뉴욕에서 숨진 두 거장의 사후 51년 만이다.

전시에는 1960∼1970년대 제작된 고틀리브의 작품 6점과 김환기의 작품 10점이 나왔다. 고틀리브는 직관적 형태와 대담한 색면을 통해 즉각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면 김환기의 추상화는 정제된 색채 구조로 동양적 의미의 명상성과 우주의 질서를 표현했다.

페이스갤러리 관계자는 "두 작가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색채와 구조를 매개로 인간의 존재와 우주적 감정의 보편성을 탐구했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 뉴욕에서 살았던 김환기와 고틀리브는 서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환기의 일기 중에 "고틀리브씨가 아프다고 해 연락을 취했더니 목소리가 좋아 안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김환기가 1967년에 그린 '십자' 형상의 추상화들이 페이스갤러리 서울에 전시된 모습. 페이스갤러리 서울 제공

김환기가 1971년에 그린 전면 점화 '무제'. 페이스갤러리 서울 제공

이번 전시는 뉴욕에 간 김환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전면 점화까지 나아갔는지를 보여준다. 뉴욕 시대 이전까지는 산과 달, 항아리 같은 한국적 소재를 추상화하는 방식을 택했던 김환기는 뉴욕에서 화면에 남은 구상적 요소를 서서히 덜어내고 십자 구도의 작품과 화면을 사분면으로 나눈 작품 등을 실험한 끝에, 1960년대 말 비로소 전면 점화에 이른다.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1970년 한국일보 개최 '한국미술대상'에서 수상했고, 자신감을 얻은 김환기는 전보다 더 큰 캔버스에서 작업을 본격화해 1971년 뉴욕 포인덱스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성공시키기에 이른다.

김환기가 분투하던 시기, 고틀리브는 '상상적 풍경(Imaginary Landscapes)'에서 '폭발' 연작으로 나아가며 예술적 정점에 이른 상태였다. '상상적 풍경'이 자연 풍경의 구도를 가져와 몇 가지 도형으로 감각을 자극한다면, '폭발'은 자연 풍경의 구도마저 빼 버리고 응축된 구체와 거친 붓질로 그린 부분을 나란히 늘어놓아 감정과 무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상상적 풍경' 3점과 '폭발' 3점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