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송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권도현 기자 |
택배기사의 건강권과 소비자 편익을 두고 ‘새벽배송’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새벽배송이 이미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는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택배기사의 과도한 심야 노동에 적절한 제동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교대제 도입, 새벽배송 품목 제한, 분류 인력 충원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결국 새벽배송에 비용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실천 가능한 방안들이다.
야간에 교대없이, 긴 시간, 고강도로 일한다
3일 노동계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심야시간대(자정~오전 5시) 배송 제한’을 제안했다. 노조 측은 ‘새벽배송 전면 금지안’이 아니라며, 야간에 이뤄지는 고강도·장시간 노동이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뉴노멀’이 돼 버린 새벽배송을 금지할 수 없다면 과로로 인한 산업재해를 막을 대안이 필요하다. 연속적인 야간 근무를 막기 위한 교대제 도입, 새벽배송 품목 제한, 분류 인력 충원 등이 언급된다.
우선 연속적인 야간 근무를 막기 위한 교대제 도입을 검토해볼 수 있다. 현재 쿠팡 심야배송 택배기사는 오후 8시 30분, 오전 0시 30분, 오전 3시 30분 등 세 차례에 걸쳐 ‘3회전 배송’을 한다. 택배노조는 이 중 가장 위험한 시간대인 자정~오전 5시 배송업무를 제한하고, 오전 5시·오후 3시 출근조로 나누는 방식을 제안한다.
택배노조는 ‘교대가 불가능한’ 배송시스템이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고 있다. 쿠팡은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를 통해 배송 업무를 하청업체에 위탁한다. 같은 배송구역에 주간 담당 대리점과 야간 담당 대리점을 따로 두는 경우가 많아, 주·야간 교대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야간노동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교대근무보다 고정적인 야간근무가 낫다, 사람은 적응한다’는 것”이라라며 “야간, 장시간, 고강도 노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건강을 소진시키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연속적으로 야간시간에 근무하면 몸의 향상성이 깨지게 된다. 밤에 일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교대근무제”라며 “야간노동을 아예 없애는 게 제일 좋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야간노동 시간을 제한하고 격주로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교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송기사가 배송 외에 프레시백 수거와 물품 분류 작업까지 하면서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이달 발표한 ‘택배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쿠팡 택배노동자는 하루 평균 11.1시간 근무하는데, 이 중 물품 분류에 드는 시간이 2.6시간에 달한다.
택배노조는 “쿠팡 새벽배송은 교대 없이 계속하는 ‘연속 고정 심야노동’으로, 생체 리듬을 파괴하여 수면장애, 심혈관 질환, 암, 우울증, 자살 충동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며 “주간과 야간 근무를 교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심야 노동의 위험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무제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맞벌이, 자영업자는 어떡하라고” 소비자 반발도
소비자들은 ‘새벽배송 금지’로 인한 불편에 우려를 표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심야배송 전면 금지는 소비자의 불편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그 피해는 단순히 소비자나 자영업자의 불편에 그치지 않고, 물류 종사자와 연관 사업자 등 광범위한 사회 구성원의 일상과 생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새벽배송 제한이 소상공인에게까지 피해를 입힐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중소상공인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새벽배송은 대기업만의 사업이 아니라 수많은 중소 식품제조업체·납품업체·농가가 이 시스템에 맞춰 성장해 온 유통 생태계”라며 “야간배송 종사자와 중소상공인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이 근무 형태를 선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는 “일부에서 제안하는 새벽배송 초심야시간 배송제한에 대한 입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대신 ‘근본적인 개선 방안’으로 주5일 근무제 정착, 주 최대 야간 작업시간 50시간 이내 제한을 내놨다.
교대제·인력 충원...결국 비용 문제로
‘택배 없는 날(택배 쉬는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송파구 동남권물류단지에서 택배 분류에 쓰이는 레일이 멈춰 있다. 조태형 기자 |
택배노조는 과도한 물량 배송이 과로로 이어진다며 ‘새벽 배송품목 제한’을 제안한다. 아침 일찍 받아야 하는 긴급한 품목은 품목 사전 설정을 통해 새벽배송하되, 배송이 급하지 않은 물품은 주간에 배송하도록 하잔 것이다.
인력충원도 뒤따라야 한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배송기사들이 물품 소분류, 프레시백 세척까지 하는 것이 노동 강도를 확 높이고 있다. 뮬류인력을 보강해 업무를 나눈다면 노동 강도를 낮출 수 있다”며 “정해진 시간 내에 배송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최저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보수 지급 방식을 마련하는 것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대안에는 모두 비용이 든다. 결국 소비자들이 자신의 편익을 위해 더 지불할 용의가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주 50시간 같은 근로시간 통제를 도입하려면 택배 단가가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새벽배송으로 몰리는 문제를 잡을 수 없다”며 “가격을 올리자고 하면 소비자들이 반대하겠지만, 장시간 노동이 표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새벽배송 전면 금지보다는 과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새벽배송을 아예 금지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며 “연속적인 심야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택배기사를 더 채용하고, 배송 단가를 올려 노동 강도를 낮추는 식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남희 기자 nami@kyunghyang.com,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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