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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한령’은 해제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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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한령’은 해제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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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지난 1일 한-중 정상회담 뒤 국빈 만찬에서 이재명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하고 있다. 박진영 위원장 인스타그램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지난 1일 한-중 정상회담 뒤 국빈 만찬에서 이재명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하고 있다. 박진영 위원장 인스타그램


박민희 선임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년 만에 한국을 국빈방문해 한-중 정상회담을 한 뒤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정상회담 뒤 만찬에서 시 주석과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이 대화를 나누는 사진에 관심이 집중되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한한령 해제와 본격적인 케이(K)-문화 중국 진출’이 있을 것이라는 글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며 기대감을 부풀린 것이다. 하지만 대중문화교류위는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어 “공식 외교 석상에서의 원론적 덕담 수준”이라며 “성급한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야당에선 ‘한한령이 안 풀렸으니 한-중 정상회담은 실패’라고 공세에 나섰다.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이후 양국 관계에 개선 조짐이 보일 때마다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가 실망으로 번지는 상황이 지난 9년 동안 반복돼 왔다. 하지만 중국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한한령 해제는 불가능하다’며, 한국이 한-중 관계 개선의 증거로 한한령 해제에 집착하는 것이 양국 관계 개선에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한한령이 시작됐지만, 지금은 중국 국내의 사회·문화 통제 조처의 하나로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16년 7월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직후 보복 조치로 중국 내 한국 영화·드라마·게임·대중문화 공연을 막고,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는 광고를 금지했다. 한국행 단체여행도 한때 금지됐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정부 차원의 한한령은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혀왔지만,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지방정부와 민간에서 한국 문화를 제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20년 시 주석의 3연임을 전후해 한한령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중국 공산당의 ‘사회·문화적 통제’ 장치로 변모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유명 아이돌 선발 리얼리티쇼인 ‘프로듀스 101’을 따라한 중국의 프로그램 ‘청춘유니3’가 2021년 인기를 끈 것이 계기가 됐다.



이 프로그램의 스폰서사인 멍뉴유업이 우유 제품 뚜껑에 있는 큐알(QR)코드를 찍어서 여러번 투표를 할 수 있는 마케팅을 하자, 팬들이 우유를 잔뜩 사다가 투표용 큐알코드만 찍고 우유는 버리는 사태가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27만병의 우유가 그대로 버려졌다’는 추산이 나오자, ‘팬덤의 사회적 영향력’에 경악한 중국 당국이 강력한 규제에 나선 것이다.



2021년 8월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과도한 팬덤 활동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연예인 인기 순위 금지 △댓글·좋아요 수 등으로 순위 조작 금지 △팬덤 관리에 대한 연예인 소속사의 책임 강화 △팬 계정 소속사 인증제 도입 △팬클럽 간 욕설·유언비어 유포 금지 △굿즈·앨범 구매 경쟁 유도 금지 △유료 투표 금지 △미성년자의 팬 활동·소비 금지 △팬클럽의 자금 모집 활동 금지 등이 담겼다. 중국 팬덤 문화의 바탕이된 케이팝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사실상 금지 대상이 된 것이다.



중국 경제 전문가인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한령이 처음에는 사드 배치에 대한 ‘괘씸죄’로 시작되었지만, 2021년의 사건을 계기로 ‘팬덤 문화가 사회적 박탈감을 조장하고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공산당 외부에 조직을 형성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중국 당국이 통제를 제도화하면서 문화·예능 통제 정책으로 변했다”면서 ”한국과 정상회담이나 관계 개선을 한다고 바뀔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과 한한령에 대해 논의를 해온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 당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건 ‘대규모 케이팝 공연’이라고 한다. 지방 도시에서의 제한적 소규모 공연은 몰라도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대규모 케이팝 공연이 지속적으로 허용되는 것을 의미하는 한한령 해제는 불가능한 것이 중국의 현실이란 얘기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케이팝 그룹들의 중국 공연이 준비되다가 ‘한한령 해제’라는 보도가 나온 뒤엔 공연이 돌연 취소되곤 했다.



한·중 외교협상에서 한한령 해제를 주요 의제로 강조하며 매달리기보다는 시급한 한·중 경제 협력의 길을 찾는 것이 우선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금 상황에서 풀기 어려운 안보 관련 사안은 ‘계속해서 논의해 풀어가기’로 하고, ‘할 수 있는 협력은 속도’를 내는 실용주의를 택했다. 시 주석은 ‘한국산 디스플레이 부품을 쓴 샤오미 휴대전화’ 선물을 통해 한·중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협력하자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그 화두를 받은 만큼, 한국은 우리 입장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지 연구위원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관계 개선의 문을 연 만큼, 다음 과제는 한국이 어떤 분야에서 중국과 새롭게 협력을 할 수 있는지 현실적이고 필요한 아이템들을 잘 준비해 이재명 대통령의 내년 중국 답방에서 제대로 제안하고 협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인의 한국 관광 제한은 이미 많이 완화된 만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한 교류를 조금씩 확대해가는 것도 현실적 방법일 것이다. 중국 내부의 변화는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한국 내에서 한한령 해제만 외치는 것은, 현실이 달라졌는데도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각주구검’의 시대착오적 요구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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