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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김부장 콤플렉스’라는 함정

조선비즈 유윤정 벤처중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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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김부장 콤플렉스’라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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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내면에는 불안과 공허를 품은 대기업 부장 김낙수(류승룡 분).

그의 삶은 서울, 자가 보유 아파트, 대기업 직장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 가지는 한국식 ‘성공 서사’의 완성판이다. 서울은 여전히 부와 기회의 중심이고, 자가 아파트는 자산 격차의 상징이다. 대기업은 안정된 연봉을 보장한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단순히 풍자 때문이 아니다. 직장인의 현실을 정면으로 비춘다. 김부장의 모습이, 현실의 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과주의에 내몰리고 인간관계보다 KPI(핵심성과지표)가 우선되는 조직 안에서 김부장은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쓸쓸하다.

드라마 속 김부장은 중산층의 표본이다. 서울에 집을 가지고, 25년째 대기업에 다니며,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한다. 그의 삶에는 빈틈이 없어 보이지만, 그 안정감이 오히려 불안의 근원이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는 겉으로는 단단하지만, 변화에 가장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김부장은 픽션이지만, 현실의 ‘김부장 사회’는 실재한다. 그는 성실하고 계산적이며 리스크를 회피한다. 그런 태도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안정은 개인의 미덕을 넘어 사회의 족쇄가 됐다.


한국 경제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의 견고한 구조 속에서 점차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체질로 굳어졌다. 이곳에서는 ‘창의적 실패’보다 ‘절차적 완벽’이 더 큰 미덕으로 여겨지고,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은 결국 실패 자체를 금지하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대기업은 내부 효율에만 몰두하고, 정부는 규제와 관리에 치중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제도적 장벽과 보수적 인식에 가로막혀 숨 쉴 공간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스며들고 있다. 수익이 보장된 ‘안전한’ 스타트업만 투자를 받고,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들은 모험 자본의 외면 속에 점차 도태된다.


심지어 은행권이 출자해 만든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조차 시리즈A 또는 B 이후의 안정적인 기업에만 투자하며 수익을 추구하는 상황이다.

‘서울 자가 김부장’의 사회에서는 모험보다 안정이, 변화보다 순응이 더 큰 보상을 받는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창업가 정신은 자라날 토양을 잃는다.

선진국은 실패를 장려하고, 한 번 쓰러진 창업가에 다시 기회를 준다. 실리콘밸리의 핵심 정신은 ‘Fail fast, learn faster(빨리 실패하고, 더 빨리 배우라)’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실패에 인색하다. 한 번 실패하면 낙인이 찍혀 신용을 잃고 자금줄이 끊긴다. “저 사람은 실패했다”는 한 문장이 오랫동안 개인의 경력을 지운다.

김부장의 성공 공식으로는 사회의 진보를 기대할 수 없다. 그는 ‘문제없이, 리스크 없이, 손해 없이’를 삶의 신조로 삼았지만, 그런 사회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자랄 수 없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보다 새로운 용기다. 혁신은 불안을 감내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유윤정 벤처중기부장(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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