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3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왼쪽 셋째) 대표를 접견하며 기업 총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진 네이버 의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젠슨 황 최고경영자, 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한국 정부·기업과 ‘인공지능(AI) 깐부’를 자처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꺼내 든 ‘통 큰 선물’은 크게 두 가지다. 글로벌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이 회사의 인공지능용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향후 5년간 한국 시장에 풀고, 기술 협력·투자 등에도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쪽의 손익을 깐깐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비디아의 주요국 투자 현황 |
엔비디아가 내년부터 2030년까지 공급하기로 한 지피유 26만장은 한국 정부와 기업으로선 ‘가뭄에 단비’와 같다. 엔비디아의 지피유는 병렬 연산을 통해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까닭에 인공지능 모델 학습에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 민·관이 보유 중인 지피유 물량은 10만장을 훨씬 밑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이재명 정부도 국내 인공지능 산업 발전을 위해 2030년까지 지피유 20만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결정으로 목표치를 단숨에 초과 달성하게 된 셈이다.
엔비디아가 얻는 실익도 크다. 전체 매출의 절반 남짓을 차지하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한국 정부와 대기업이라는 ‘큰손’ 고객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에스케이(SK)·현대차·네이버 등과 인공지능 칩을 비롯해 소프트웨어 플랫폼, 로봇·자율주행차·통신 등 제조업 전반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데 따른 장점도 적지 않다. 한국 시장에서 에이엠디(AMD)·브로드컴 등 경쟁사를 견제하며 제조업에 특화된 피지컬(물리적) 인공지능을 선제 도입해 기술 표준을 선점하고, 시장 주도권을 더욱 강화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 수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 기조에도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보면, 한국은 엔비디아 칩과 이 회사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커질 우려도 있는 셈이다. 자체 인공지능 칩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성과를 내고 있는 중국과 달리, 엔비디아의 한국 영향력이 막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엔비디아의 지피유 공급은 공짜나 할인 판매가 아니다. 현재 시장가치를 고려할 때 지피유 26만장 구매에 필요한 돈은 10여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엔비디아가 이번 협업을 계기로 발표한 지원책도 따져볼 대목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앞서 지난달 31일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접견 결과 브리핑에서 “엔비디아가 한국에 합작 법인(조인트 벤처)을 만들어 30억달러(약 4조3천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이날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는 국내 피지컬 인공지능 분야 발전을 위해 약 30억달러를 공동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가, 이를 반나절 만에 번복했다. ‘공동 투자’라는 문구를 뺀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한국 투자액이 많지 않아 ‘공동 투자’라는 표현을 쓰는 걸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는 그간 엔비디아가 주요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과 대비된다. 황 최고경영자는 지난 9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동행해 현지 인공지능 스타트업(신생 기업)에 20억파운드(약 3조8천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승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은 “엔비디아 칩을 대규모로 확보한 건 큰 성과”라면서도 “인공지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모두 엔비디아에 종속되지 않도록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채반석 기자 chaib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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