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2세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무대에서 미·중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모두 참전한 채 펼쳐진 일주일의 ‘외교 슈퍼위크’가 폭풍처럼 지나갔다. 의장으로 20년 만에 국내에서 펼쳐진 대규모 국제 정상회의를 이끈 이재명 대통령은 대미 협상을 마무리 지어 경제·안보에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소원해졌던 중국과의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상들과 공동 번영을 향한 신뢰를 다졌다. 다만 격동하는 ‘뉴노멀’의 세계질서 앞에서 가까스로 피한 ‘최악’의 상황을 ‘국익 중심 실용외교’로 관철하려면 이제부터가 진짜 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에게 100%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상당히 잘 버텨냈다. 일단 안개는 제거됐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상·안보 합의를 이뤄낸 것을 두고 2일 이렇게 평가했다. 예측 불가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당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는 것이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도 “미국의 억지가 뉴노멀인 세계에서 시간을 지연하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종 쟁점이었던 대미 투자펀드에서 현금 투자액을 2천억달러로, 연간 투자 상한액을 200억달러로 제한한 것은 ‘현실적 타협안’에 가깝다. 트럼프 정부의 패권적 통상 압박에 정부가 마지못해 차선 또는 차악을 선택한 것이다. 국립외교원장 출신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앞으로 이행 과정에서 투자의 속도·빈도·강도 조절은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정상회담 직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등 한국 정부 발표와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데, 합의 이행 과정에서 양쪽이 엇갈릴 경우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1년 만의 방한으로 관계 회복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도 대체로 성공적인 첫걸음이란 평가가 나왔다. 한·중 양국은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사태에 이어 윤석열 정부 때 미국에 경도된 외교정책 탓에 소원한 관계를 이어왔다. 기대했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격상이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지지를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 주석과 이 대통령은 비공개 만찬 자리에서 유쾌한 농담을 나누며 양국 관계 진전에 대해 마음을 열고 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은 것은 한한령(한류 제한령) 해제 등 ‘진전된 성과’로 이어가는 것이다. 홍 전 원장은 “미·일 관계는 상당히 진전되고 구축이 잘됐으나 중국과의 신뢰는 아직 회복 중이니 연말 이전 중국 방문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국익을 챙기기 위한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빛을 발하려면 관계의 물꼬를 튼 중국과 동맹국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미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중 간의 경쟁이 격화될수록 편들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을 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양국 관계를 중간에서 잘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지원 신형철 고경주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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