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에서 장보고‑Ⅲ 배치‑Ⅱ 1번함 장영실함 진수식이 열리고 있다. 해군 제공 |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가능해지면서,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궁금증을 문답으로 정리해봤다.
1. 핵추진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무제한인가?
무제한 잠항 능력은 핵추진 잠수함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배터리를 충전해 프로펠러를 돌리는 디젤 잠수함은 배터리가 떨어지면 수면에 부상해 디젤엔진을 가동해 다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잠수함 내부에는 공기가 부족해 잠수함 속 공기를 사용해 디젤엔진을 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추진체계가 소형 원자로여서 배터리 충전을 위해 물 위로 올라올 필요가 없어, 무제한 잠항 지속능력이 있다고 한다. 다만 무제한 잠한 능력은 ‘이론상’으로만 그렇다.
해군 쪽 설명을 들어보면, 실제 미국 핵추진 잠수함은 승조원 피로 때문에 두 달 잠항이 최대라고 한다. 원자로는 무한대로 돌릴 수 있지만, 승조원들의 체력 고갈, 스트레스로 두 달 뒤면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운용하는 디젤 잠수함에 공기불필요시스템(AIP)을 장착하면 최대 3주 가량 잠함을 할 수 있으므로, 핵추진 잠수함의 실제 잠항 능력은 디젤잠수함의 3배 가량이다.
한국이 자체 기술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 잠수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가격 대비 성능, 임무의 자율성 등을 감안하면 핵추진 잠수함 1대 만들 돈으로 최신 디젤 잠수함을 여러 척 만드는게 낫다는 주장도 군 안팎에는 있다.
2. 핵추진 잠수함에는 핵무기가 있다?
핵추진 잠수함에는 핵무기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냉전 때부터 확립된 미국의 ‘3대 핵전력’(Nuclear Triad)은 지상에서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바다 속에서 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하늘에서 전략폭격기가 투하하는 핵폭탄을 가리킨다.
3대 핵전력은 적의 핵 선제공격을 받더라도 살아남아서 반격하려고, 핵무기를 땅(아이시비엠 발사 기지)뿐만 아니라 바다(전략핵잠수함), 하늘(전략폭격기)에 분산 배치한 것이다. 주식을 투자할 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며 분산 투자를 강조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미국의 ‘3대 핵전력’(Nuclear Triad)은 지상에서 발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왼쪽), 전략폭격기(오른쪽 위)가 하늘에서 투하하는 핵폭탄, 전략핵잠수함이 바다 속에서 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가리킨다. 미 공군·해군 누리집 |
이 때문에 핵추진 잠수함이라고 하면 핵무기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미국이 1954년 세계 최초의 핵추진 잠수함인 ‘노틸러스’(USS Nautilus)를 건조한 이유는, 핵무기 탑재가 아니라 당시 미국과 러시아를 잇는 가장 빠른 바닷길인 북극해를 지배하기 위해서였다. 냉전시기 미국은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해 북극권에 기지를 운영하는 등 북극해가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핵잠수함은 최대 속력으로 장기 항해하더라도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북극해까지 최단시간에 가는데 유리했다. 1958년에 노틸러스호는 북극의 얼음판 밑을 지나 북극점에서 수면 위로 떠오름으로써 북극점에서 부상한 세계 최초의 잠수함이 됐다.
원자로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미 해군 잠수함은 ‘핵추진잠수함’(SSN) ‘순항유도탄잠수함’(SSGN) ‘탄도유도탄잠수함’(SSBN) 등 3종류로 나뉜다.
핵추진잠수함(SSN)은 ‘핵추진 공격잠수함’ 또는 ‘공격핵잠’으로도 불린다. 미국이 이 잠수함을 냉전 때부터 수상전투함 공격용 등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격’이란 말이 붙어 공격핵잠이라고 불린다. 이 잠수함에는 어뢰와 순항미사일 같은 재래식 무기가 실려있고, 핵무기는 없다. 순항유도탄잠수함(SSGN)은 핵 미사일이 아닌 순항미사일을 싣고 다닌다. 핵무기로 무장한 잠수함은 전략핵 잠수함(SSBN)이다. 미국이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탄도유도탄잠수함(SSBN)을 처음 만든 것은 1959년 6월이었다.
한국이 만들려고 하는 핵추진 잠수함은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핵추진 잠수함(SSN)이다.
3. 잠수함 잡는 데는 잠수함이 최고?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가져야 한다는 주된 논리는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 핵추진 잠수함 위협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국 잠수함이 북한 항구 앞에 매복하고 있다가 출항하는 북한 핵추진 잠수함을 추적하고 유사시 격멸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디젤 잠수함의 잠항 능력으로는 이런 수중 감시, 추적 작전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어, 무한동력을 갖춘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엘에이(LA)급 핵추진 잠수함(SSN) 아나폴리스함(SSN-760). 미 해군 누리집 |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SSN)을 보유해야 하는 이유로 “디젤 잠수함이 잠항 능력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날 트루스소셜에 “우리의 군사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낡고 기동성이 훨씬 떨어지는 디젤 추진 잠수함 대신,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적었다.
실제 냉전 때 미국과 소련 잠수함이 상대 항구에 숨어있다 출항하는 잠수함을 추적하고 미국 핵추진 잠수함이 대양에서 소련 핵추진 잠수함을 탐색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미 핵추진 잠수함의 활동 무대는 대양이었다. 핵추진 잠수함은 넓은 해역에서 장기간 작전하기에 적합하나 수심이 낮고 작전반경이 좁은 한반도 수역에서의 필요성은 의문이라고 보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 신중론도 있다.
1·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지금까지 전쟁사를 살펴보면, 수중 잠수함 간 교전 사례가 없다. 2차 대전 때 미국과 일본 잠수함이 수상 항해 중인 상대 잠수함을 격침시킨 사례는 있지만 잠수함과 잠수함이 수중에서 교전한 경우는 없다. 애초 잠수함은 수상의 표적을 공격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 속에서 잠수함끼리 어뢰를 쏘는 등 숨 막히는 숨바꼭질을 벌이는 장면은 영화에서 자주 나오지만, 현실에서 등장한 적은 없다.
실제 잠수함 간 수중 교전 사례가 없는데도 국내에선 ‘잠수함을 잡는데는 잠수함이 최고’란 주장이 격언처럼 자리잡은 데는 1980년대 북한 잠수함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상황이 작용했다. 북한은 1960년대 중국에서 로미오급 잠수함을 도입한 뒤 1970년대 잠수함을 자체 건조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 해군은 잠수함이 한 척도 없었다.
1980년대 초반 해군은 ‘우리도 잠수함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잠수함 잡는 데는 잠수함이 최고‘란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때도 해군 내부적으로는 잠수함과 잠수함이 1 대 1일로 교전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물 속에서 음파 탐지기로 상대 잠수함을 탐색할 수 있는 거리가 2~3㎞ 정도여서 잠수함간 수중 교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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