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대신 쇼츠 경쟁…국감 본질 실종
조희대 압박한 '추미애 법사위' 무리수
"민주당보다 낫다" 최혁진 강성 공세
최민희 논란 확산에 과방위 국감 무색
정책 질의는 묻혀…국감 무용론 확산
국회는 매년 정기국회 회기 중 30일 이내로 국정감사를 엽니다.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정 운영 전반에 관해 실태를 파악하고,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통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입니다. 여야 할 것 없이 보좌진들은 추수를 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질의를 준비합니다. 각고의 노력 덕분에 과거엔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국감 스타'가 탄생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죠.
하지만 올해는 송곳 같은 검증과 민생을 위한 국감은 온데간데없고 '쇼츠 영상'만 남았습니다. 막말과 삿대질은 기본, 파행을 거듭하는 와중에 상대당을 향해 윽박지르는 장면을 유튜브 영상으로 박제해 조회수를 올리기에만 몰두한 탓입니다. 변질돼 버린 국감에 보좌진 사이에선 "밤을 새워 정책 질의를 준비해도 일차원적으로 싸우는 상임위원회에 이슈가 묻힐 수밖에 없다"는 허탈감이 터져 나옵니다.
대표적인 게 국회 법제사법위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국감 첫날인 지난달 13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질의를 강행하면서 여야 간 극한 대립이 펼쳐졌습니다. 추 위원장은 인사말 이후 이석하려던 조 대법원장을 1시간 넘게 앉혀두고 "대선 개입을 감추기 위해 사법부를 이용한 것"이라며 윽박질렀습니다. 이러한 추미애 법사위는 당 지도부조차 "못 말린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여권 관계자는 "추 위원장이 이재명 대통령 순방 기간 중인 9월 30일에도 조 대법원장 청문회를 지도부와 논의 없이 추진한 것을 두고 강성 지지층에서 항의 문자가 쏟아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조희대 압박한 '추미애 법사위' 무리수
"민주당보다 낫다" 최혁진 강성 공세
최민희 논란 확산에 과방위 국감 무색
정책 질의는 묻혀…국감 무용론 확산
편집자주
주말 아침, 다정하고 친근하게 한국 정치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갈등과 분노가 아닌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시스 |
국회는 매년 정기국회 회기 중 30일 이내로 국정감사를 엽니다.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정 운영 전반에 관해 실태를 파악하고,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통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입니다. 여야 할 것 없이 보좌진들은 추수를 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질의를 준비합니다. 각고의 노력 덕분에 과거엔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국감 스타'가 탄생하며 이목을 끌기도 했죠.
하지만 올해는 송곳 같은 검증과 민생을 위한 국감은 온데간데없고 '쇼츠 영상'만 남았습니다. 막말과 삿대질은 기본, 파행을 거듭하는 와중에 상대당을 향해 윽박지르는 장면을 유튜브 영상으로 박제해 조회수를 올리기에만 몰두한 탓입니다. 변질돼 버린 국감에 보좌진 사이에선 "밤을 새워 정책 질의를 준비해도 일차원적으로 싸우는 상임위원회에 이슈가 묻힐 수밖에 없다"는 허탈감이 터져 나옵니다.
지도부도 못 말린다…'추미애 법사위'
대표적인 게 국회 법제사법위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국감 첫날인 지난달 13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질의를 강행하면서 여야 간 극한 대립이 펼쳐졌습니다. 추 위원장은 인사말 이후 이석하려던 조 대법원장을 1시간 넘게 앉혀두고 "대선 개입을 감추기 위해 사법부를 이용한 것"이라며 윽박질렀습니다. 이러한 추미애 법사위는 당 지도부조차 "못 말린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여권 관계자는 "추 위원장이 이재명 대통령 순방 기간 중인 9월 30일에도 조 대법원장 청문회를 지도부와 논의 없이 추진한 것을 두고 강성 지지층에서 항의 문자가 쏟아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추미애 국회 법사위원장이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질의하는 모습을 유튜브 영상으로 올렸다. 유튜브 캡처 |
국정감사NGO모니터단 분석에 따르면, 추 위원장은 감사위원(국회의원)의 평균 질의 시간보다 3배 이상 많은 발언과 질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야당 의원들에겐 발언권을 제한하거나 퇴장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니터단은 추 위원장에 대해 "마치 축구 경기에서 상대 팀 주장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 없이 경기를 하도록 하고, 옐로·레드카드를 남발하는 일방적인 시합 진행의 모습"이라고도 평가했습니다.
'쇼츠왕' 최혁진, 4개월 만에 후원금 다 채워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질의하며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고영권 기자 |
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한술 더 떠서 여권의 강성 지지층에게 존재감을 어필했습니다. 최 의원은 조 대법원장 앞에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조요토미 희대요시(조희대+도요토미 히데요시 조합한 말)'라고 적힌 합성 사진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조 대법원장 임명은 대법원을 일본 대법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죠. 옆자리에 앉은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재판소원 관련 질의를 할 때는 90도로 몸을 틀고 주 의원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기행도 벌였습니다. 민주당은 '무리수'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한 민주당 의원은 "우리 부담을 덜어주니 고마운 사람"이라며 속내를 보이더군요.
자신의 국감 장면을 올린 쇼츠 영상이 40여 개입니다. 하루에 2, 3개씩 꾸준히 올린 셈이죠.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은 조회수가 90만 회를 넘겼고, 댓글엔 "요즘 일하시는 걸 보면 민주당 10명보다 낫다" 등 칭찬이 넘칩니다. 쇼츠 효과를 톡톡히 봤는지 지난달 22일 "국회의원이 된 지 4개월 만에 올해 후원금(연 1억5,000만 원)이 마감됐다"는 글을 자랑하듯 올렸습니다.
국감 후반 집어삼킨 최민희
지난달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종합감사에서 최민희 위원장이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의 사퇴 요구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후반부 국감은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독무대였습니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MBC 비공개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보도를 문제 삼으며 박장호 MBC보도본부장을 퇴장시켜 '언론 자유 침해'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국감 기간 국회 경내에서 딸 결혼식을 치른 것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최 위원장의 해명은 의구심만 키웠고, 피감기관 관계자들은 국감에서 '축의금을 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해야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최 위원장을 직권남용, 방송법 위반, 뇌물죄 등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과방위는 (최)민희의 전당"이라는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처럼 과방위 국감은 정부 견제는 사라지고 '최민희 청문회'로 마무리됐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에 최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과방위 국감을 마감하며 "이런 논란의 씨가 없도록 좀 더 관리하지 못한 점이 매우 후회되고 아쉽다"며 사과했습니다.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욕설 문자' 논란으로 설전을 펼친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을 노려보고 있다. 뉴시스 |
과방위에선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과 김우영 민주당 의원이 맞붙으면서 "한주먹 거리" "옥상으로 올라와" 등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막말이 오갔습니다. 두 사람의 감정싸움에 이날 출석한 피감기관 관계자 등은 회의장 밖에서 4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습니다. 박 의원은 '국민 찌질이 박살 내는 박정훈'(조회수 1만7,000회) '양자역학 관련 질문은 권위자에게 양보했습니다^^'(조회수 10만 회) 등 유튜브 쇼츠로 국감장 밖에서도 여당 공세에 앞장섰습니다.
여당은 파행 방치, 야당은 준비 부족
올해 유독 '막장 국감'이란 비판을 받은 데는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습니다. 여야가 맞붙은 주요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여당 소속인데도 민주당은 국감이 정쟁으로 흐르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습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최 위원장 논란이 불거진 뒤 전화했다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국민의힘은 결정적 한 방이 없다 보니 파행 유도로 눈길을 끄는 데 집중했습니다. 시종일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논란만 물고 늘어지며 '도돌이표' 의혹을 제기했지만, 끝내 운영위원회 증인 채택조차 불발되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야당의 시간'이라는 국감에서 무기력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합니다.
정작 꼼꼼한 정책 질의로 품격을 보여준 의원들은 허탈하기만 합니다. 민주당 소속 한 보좌관은 "여당으로서 챙겨야 할 문제에만 집중해도 바쁜데 정쟁 국감이 되어버려서 아쉽다"며 "우리라고 왜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 주목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겠냐"고 털어놨습니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도 "법사위와 과방위를 제외하면 아무리 의원들이 준비해서 민생에 관련된 질문을 하고, 좋은 국감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전혀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달간 몰아쳐서 열리는 국감이 오히려 주목 경쟁을 유도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감사의 내용이나 대상이 아닌 이슈들이 국감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는 실정"이라며 "이렇게 되면 국감이 점차 '통과의례' 수준으로 여겨지면서 무용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안으론 미국의 '상시 감사제'처럼 상임위원회가 평시에 활동을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아예 "국감을 없애자"는 여론이 더 커지기 전에 여야 모두 이번 국감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이지원 인턴 기자 jiwon1225@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