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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정상회담 개최… 늦어진 회담, 中 '다카이치 거부감'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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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정상회담 개최… 늦어진 회담, 中 '다카이치 거부감'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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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겨우 만난 중일 두 정상
시진핑 "무라야마 담화 계승돼야"
다카이치 "다양한 의견 中에 전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진행된 중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경주=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진행된 중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경주=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31일 경주에서 첫 회담을 가졌다. 이날 회담은 오후 들어서도 진행 여부를 확정 짓지 못하는 등 큰 지연을 겪었다. 중국 내에서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시 주석이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우여곡절 끌 이뤄진 회담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시 주석과 다카이치 총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날 오후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시 주석이 일본 총리와 회담한 것은 약 1년 만이며 두 정상 간 회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약 30분간 개최된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예민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대거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상회담 후 취재진과 만나 양국 간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 동중국해 문제, 희토류 수출 관리 문제, 중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안정성 확보 요구,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상황 등에 대한 우려 등 다양하고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시 주석 측에 전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도 예민한 역사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직접 침략 역사를 반성하고 피해국에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언급하며 "이 정신은 계속 계승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역사와 대만 문제 등 중대한 원칙에서 '4대 정치문건'이 규정한 내용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4대 정치문건은 중·일수교 이후 양국이 맺은 4건의 성명과 조약을 의미한다.

이날 회담 성사까지는 우여곡절이 컸다. 중일 양국은 이날 오후 들어서까지 회담 개최 여부를 확정 짓지 못했다. 오후 2시가 돼서야 일본 정부가 "오늘 오후 중으로 다카이치 총리와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지만 개최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다. 오후 4시(한국시간) 중국에서 진행된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는 궈자쿤 대변인이 "양측은 회담 문제에 대한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만을 밝혀, 회담 성사 여부조차 확인해 주지 않았다.

'대만 중시' 다카이치에 불만 가진 中



다카이치 사나에(오른쪽)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1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 엑스(X) 캡처

다카이치 사나에(오른쪽)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1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 엑스(X) 캡처


이번 중일 정상회담은 시 주석이 얼마나 우호적인 모습을 내비치는지가 관건이었다. 중국 정부가 다카이치 총리 선출 이후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 일본 총리가 취임한 직후 중국 정부는 시 주석 명의로 축전을 보내왔지만, 이번에는 리창 국무원 총리 명의 서한을 보냈다. 중국 관영매체는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한 직후인 22일 "여자 트럼프가 또 하나 나왔다"며 직설적 비난도 퍼부었다.


다카이치 총리에게 박힌 '반중' 이미지가 중국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내에서도 대만과 밀접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 4월에는 중의원 신분으로 대만을 찾아 라이칭더 대만 총통을 예방했고,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선출돼 총리 취임이 점쳐지던 이달 9, 10일에도 대만 건국기념일(쌍십절) 행사에 맞춰 대만을 방문했다. 지난 9일 도쿄에서 열린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인권 집회에 메시지를 보내 "중국 공산당에 의한 탄압이 지속되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혀 중국 외교부의 항의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반중' 이미지 희석 성공하나


그러나 막상 총리에 취임한 후에는 이런 날 선 발언이 뚝 끊겼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4일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중국을 "중요한 이웃 국가이며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측근은 아사히신문에 다카이치 총리가 현실노선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담이 실현된 것 또한 다카이치 총리의 변화를 중국이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중국이 "다카이치 총리의 언행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회담 실시 여부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닛폰텔레비전은 "중국 측이 회담 3일 전까지만 해도 두 정상이 '서서 이야기조차 못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28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대한 비난 메시지가 없었고,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이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해 회담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와 만난 시 주석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사히는 회담 시작 때 양국 국기 앞에 선 정상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고 전했다.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할 때도 다카이치 총리는 살짝 미소를 보였지만 시 주석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APEC 정상회의 도중 시 주석을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사진을 엑스(X)에 게시했는데, 이 사진에서는 시 주석도 웃는 표정을 지었다.

앞서 이날 오전 닛케이는 "중국 외교에서는 정상들의 표정이나 몸짓도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시 주석이 다카이치 총리와의 첫 대면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관건"이라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2014년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스승인 아베 전 총리와의 만남에서는 회담 내내 무표정을 유지하기도 했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