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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빈 비행기 샤워실'에서 OTT 금기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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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빈 비행기 샤워실'에서 OTT 금기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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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③OTT 드라마 'PPL 안전지대' 9년 만에 끝났다

김은숙 작가 넷플릭스 신작 '다 이루어질지니'
"내가 좋아하는 샴푸" 과도한 PPL 잇따라 등장
구독료 오르는데 광고는 더 노골적으로 보라고?
한류스타 출연료·작가료 상승, IP 독점 부메랑

편집자주

격변의 시대, 세상은 곳곳에서 뒤바뀌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에서 그 역전의 순간을 포착해 사회·문화적 변화를 짚어 봅니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지니 역을 맡은 김우빈(오른쪽)이 비행기 기내식을 먹으며 이거 너무 맛있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기내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랍에미리트 항공사인 에미레이트가 간접광고(PPL) 투자사로 참여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에서 대사를 통해 노골적인 PPL이 노출되기는 이례적이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지니 역을 맡은 김우빈(오른쪽)이 비행기 기내식을 먹으며 이거 너무 맛있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기내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랍에미리트 항공사인 에미레이트가 간접광고(PPL) 투자사로 참여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에서 대사를 통해 노골적인 PPL이 노출되기는 이례적이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헐, 얘 돌아왔어!"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신작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배우 김우빈은 로봇청소기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CF 같은 장면으로 드라마의 몰입을 확 깨는 순간은 계속됐다. "야, 너 내가 아끼는 샴푸 한 통 다 썼어?" 같은 화에서 수지는 샤워실에서 나와 난데없이 샴푸 통을 볼에 갖다 댄 뒤 김우빈을 그윽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김우빈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은 중동 설화 '알라딘'에서 주인이 손으로 쓱쓱 램프를 문지르면 튀어나왔던 정령, 지니. 로봇청소기를 소재로 대화하고 "내가 아끼는 샴푸"를 썼다며 싸우는 정령과 인간(수지)이라니.

비행기에 샤워실이? 이 장면 왜 들어갔나 보니

이 기묘한 설정은 PPL 일환으로 제작됐다. 드라마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 제작 협조에 'Narwal(나르왈)'과 '필립비'란 업체명이 등장한다. 나르왈은 극에서 김우빈이 대사로 환기한 로봇청소기를 만든 중국 회사이고, 필립비는 수지가 그윽하게 바라본 샴푸를 만든 미국 회사다. 두 다국적 기업이 이 드라마에 제작비를 지원했고, 김 작가가 두 제품 관련 에피소드를 드라마에 PPL로 써넣었다. 웃음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광고였다. 김 작가식 유머의 두 얼굴이다.

추가로 '다 이루어질지니' 2화 한 장면. 영어로 'Emirate(에미레이트)'란 문구가 새겨진 비행기 안에서 수지는 샤워부스로 가 김우빈을 찾고 카메라는 그 안의 호화로운 샤워실을 비춘다. 비행기에서 샤워실을 쓸 수 있는 승객은 과연 몇이나 될까. 비행기 샤워실 숨바꼭질 에피소드는 아랍에미리트 항공사인 에미레이트 PPL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 드라마엔 10개 기업의 제품이 PPL로 나온다. 시청자들은 당혹했다. 온라인엔 '넷플릭스 오리지널인데 심지어 대놓고 PPL이' '그동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었던 PPL 범벅이었던 장면들이 너무 눈에 거슬렸던 건 나만 그런 건지 TT' '보는 내내 너무하네 너무해, 화내면서 봤다' 등의 글이 여럿 올라왔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비행기 샤워실이 클로즈업됐다. 항공사 PPL이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비행기 샤워실이 클로즈업됐다. 항공사 PPL이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배우 수지가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샴푸를 얼굴에 갖다 대고 내가 아끼는 샴푸라고 말하고 있다. 이 샴푸 업체는 드라마에 PPL로 투자했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배우 수지가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샴푸를 얼굴에 갖다 대고 내가 아끼는 샴푸라고 말하고 있다. 이 샴푸 업체는 드라마에 PPL로 투자했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배우 김우빈이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로봇청소기를 바라보며 얘 돌아왔어라고 놀라고 있다. PPL이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배우 김우빈이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로봇청소기를 바라보며 얘 돌아왔어라고 놀라고 있다. PPL이다.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PPL 시청자 반응.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PPL 시청자 반응.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PPL 시청자 반응.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PPL 시청자 반응.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PPL 시청자 반응.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PPL 시청자 반응.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PPL 시청자 반응.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 PPL 시청자 반응.


K콘텐츠 시장의 간판 창작자 김은숙 작가. 뉴스1

K콘텐츠 시장의 간판 창작자 김은숙 작가. 뉴스1


김 작가와 넷플릭스가 9년 만에 바꾼 PPL판

OTT에 'PPL 공습'이 시작됐다. TV와 달리 OTT 드라마는 지난 9년간 'PPL 청정 지대'로 통했지만 최근 역전의 순간을 맞았다. OTT 드라마에 제품 기능을 부각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한류스타가 "내가 아끼는"이라며 상품을 홍보하는 대사까지 등장했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K콘텐츠의 간판 창작자인 김 작가가 대본을 썼고, '유통 및 투자의 중심' 넷플릭스가 제작했다. K콘텐츠 산업의 두 권력이 만나 노골적인 PPL이 포함된 콘텐츠를 내놓자 PPL 노출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시청 불편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OTT 요금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는데 시청 환경이 나아지기는커녕 되레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는 PPL에까지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PPL 아녜요" 적극 해명하던 OTT의 역전

"'다 이루어질지니' 보고 좀 놀랐어요, (PPL이) 통상적이지 않아서. 내부에 무슨 사정이 있나 싶었죠." A OTT에서 일하는 고위 관계자는 김 작가와 넷플릭스가 PPL을 노골적으로 활용한 콘텐츠를 공개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이 '다 이루어질지니' PPL 사례를 두고 놀란 배경은 이렇다. 넷플릭스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16년. 그 이전에 제작사들은 드라마를 만들 때 제작비를 100% 회수하기 어려웠다. KBS·MBS·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제작비의 60~70% 정도만 대줘 나머지는 제작사들이 간접광고 등을 통해 모자란 제작비를 메워야 했다. "방송사로부터 받은 제작비로는 도저히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며 제작사들이 PPL을 노골적으로 활용하게 된 배경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서대영(진구, 오른쪽) 상사와 윤명주(김지원) 중위의 키스신. 자동운전주행 기능이 없는 차에선 불가능한 장면이다. 드라마 메인 스폰서 업체 PPL이다. KBS 영상 캡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서대영(진구, 오른쪽) 상사와 윤명주(김지원) 중위의 키스신. 자동운전주행 기능이 없는 차에선 불가능한 장면이다. 드라마 메인 스폰서 업체 PPL이다. KBS 영상 캡처


넷플릭스 국내 상륙 후 제작 시스템은 180도 달라졌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국내외 OTT들이 제작사에 제작비 전액을 대면서 오랜 PPL 관행도 변했다. 특정 차의 자동 주행 상태 기능을 알리기 위해 남자 배우가 운전대에서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갑자기 조수석에 탄 여자 배우에 입을 맞추는 '위험천만 키스신'이 펼쳐지는 TV 드라마의 PPL 병폐들이 OTT에선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총 1,0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국내 최대 블록버스터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도 PPL은 없었다.

이렇게 OTT들은 'PPL 노출 최소화 콘텐츠'로 시청자의 몰입감을 높였고, 시청자들은 "TV 드라마였음 PPL 범벅이 됐을 것"이라며 OTT에서 기획되는 작품들을 반겼다. 지난해 가을 화제를 낳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PD는 콘텐츠에 노출된 편의점(CU) 상품을 두고 취재진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PPL이냐'고 다들 궁금해하시던데 아니다. 물품만 대여했고 촬영 후 다 (CU에서) 수거해 갔다"고 먼저 해명하기까지 했다. OTT가 PPL 노출을 그간 얼마나 경계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3 한 장면. 세 시리즈 제작에 1,000억 원이 든 이 드라마엔 PPL이 없다. 서바이벌 참가자들이 입고 신은 운동복과 운동화는 한 기업의 물품 제공으로 이뤄졌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3 한 장면. 세 시리즈 제작에 1,000억 원이 든 이 드라마엔 PPL이 없다. 서바이벌 참가자들이 입고 신은 운동복과 운동화는 한 기업의 물품 제공으로 이뤄졌다. 넷플릭스 제공


9년 만에 'PPL 안전지대' 깨진 세 가지 이유

국내외 OTT엔 PPL에 대한 내부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9년간 PPL 과대 노출을 경계했던 OTT는 갑자기 왜 PPL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걸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①방송사와 OTT의 작품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창작 집단에 산업의 주도권이 넘어가고 ② OTT의 지식재산권(IP) 독점으로 제작사의 2차 수익 활로가 막히면서 제작사의 PPL 요구가 거세졌다. B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비를 100% 투자받는 대신 IP를 OTT에 내주다 보니 우리(제작사)가 PPL 외 수익을 낼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 공개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와 '오징어 게임' 시즌3(넷플릭스)를 비롯해 '북극성(디즈니플러스)' 등은 제작비로 400억 원 이상을 썼다. ③OTT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작진이 들고 오는 PPL의 문턱을 낮추려는 분위기다. C OTT 관계자는 "PPL로 따로 수익을 내려고 한다기보다 제작비에 태우는(녹인다는 뜻) 쪽으로 (PPL 수익을) 활용한다"고 귀띔했다. 'OTT 드라마의 PPL 안전지대'가 끝난 배경이다. '다 이루어질지니'의 PPL 사례에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넷플릭스는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제작비 전액을 선투자하고 있으며 실패에 대한 모든 위험을 짊어지고 있다"며 "다만, 제작진이 작품의 이야기, 캐릭터, 배경 등 창작 의도와 부합하는 요소의 일부로서 PPL을 고려할 경우 유연한 자세로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넷플릭스 본사. 넷플릭스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 넷플릭스 본사.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는 초기 "절대 광고를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입장을 뒤집어 2022년 중간 광고를 활용한 광고 요금제를 도입했고, '다 이루어질지니'를 통해 PPL 노출 수위까지 끌어올렸다. 제작비는 모두 회수해 적자는 면했지만 추가 수익을 원하는 제작사와 IP를 손에 쥐고 놔주지 않는 OTT의 평행선, 즉 두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건 결국 K콘텐츠 소비자다. 한류 스타 출연료 및 작가료 인상으로 인한 제작비 폭등과 IP 문제 등 OTT 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경제성 위기가 광고 노출 확대로 구독자에 고스란히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중간 광고 보면 구독료 할인, 과도한 PPL 패싱 왜 선택할 수 없나"

현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면 이 문제를 "돈(사용료) 내고 PPL 보기 싫으면 OTT 구독을 끊어라"라고 쉬 넘길 수만도 없다. 지난 8월 기준 넷플릭스 월간 사용자 수는 1,457만 명(와이즈앱·리테일 기준). 국민 2명 중 1명(54.3%, 콘텐츠진흥원 '2024 OTT 이용행태 조사' 자료)이 돈을 내고 OTT를 보고 있으며, 1인당 평균 2(2.2)개 이상의 OTT를 유료로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OTT의 과도한 PPL에 대한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OTT는 'PPL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방송법 규제를 받지 않는 OTT의 콘텐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PPL 심의도 받지 않는다.

OTT의 과도한 PPL 방치는 중간 광고 할인 정책과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 실장은 "OTT들은 광고형 할인 요금제를 도입해 중간 광고를 볼 경우 기본 월 구독료의 절반 이상을 깎아 주고 있다"며 "광고나 다름없는 과도한 PPL을 콘텐츠 곳곳에 넣어 유통할 경우 소비자 불편 측면에서 이용료 할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간 광고 시청 여부 선택처럼 'PPL 버전'과 'PPL 클린 버전'을 따로 유통해 구독자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를 지낸 김언경 뭉클 미디어 인권 연구소장은 "돈을 내고 보는 OTT에선 기존 방송사에서 만들어진 뒤 2차 유통되는 콘텐츠라 해도 그 속 PPL 노출은 검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물며 중간 광고를 피해 제 돈을 내고 보는 OTT 구독자에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PPL이 삽입된 콘텐츠의 일방적 송출은 광고비의 이중 부과이자 구독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