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요구해 30일 승인받은 핵추진 잠수함이 동북아시아 정세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 북한이 군사적 위협 강화로 여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관계 개선 노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한국이 ‘핵연료 무기화’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 기조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전날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데에는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고 미국의 동맹 현대화 기조에 부응한다는 목적이 깔려있다. 미국이 방위비 부담을 이유로 군사적 지원을 축소하며 동맹국의 자체 국방력 강화를 요구하는 상황을 활용해 한국의 숙원 과제를 해결한 측면도 있다.
대통령실은 한반도 주변 정세가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 “우리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주변국도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한반도 주변 정세에 상당한 외교·안보적 여파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미 핵 협의에 반발해온 북한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운영을 상당한 위협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응해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 위협을 강화하면 군사적 긴장이 커질 수 있다.
한국 기술로 독자 설계·건조한 세번째 3000t급 잠수함인 신채호함. 연합뉴스 |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리스크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 도입 필요성으로 중국 잠수함 추적 활동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논란이 됐다.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국빈으로 참석하기 직전에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꺼낸 것도 시점상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 회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중국용이라는 언급을 삼가지 못하면 치명적인 경제적·안보적 피해를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고 썼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미국 주도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 한국이 최전방 창과 방패로 동참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실언이건 협상 전술이건 시급히 중국을 관리해야할 숙제를 남겼다”고 밝혔다.
일본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움직임을 자극하며 동북아 역내 ‘핵 도미노’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국방 분야의 주요 정책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이 ‘핵연료 군사화’에 돌입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정당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에서 “북한은 한국이 사실상 핵무장을 했다고 간주할 것”이라며 “한국이 국제 사회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규범을 근거로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취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991년 ‘핵에너지를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한다’는 내용으로 체결된 남북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 논란도 제기된다.
한국 정부가 평화적·산업적 용도를 넘어선 군사적 목적의 핵연료 사용을 추진함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사회로부터의 핵무기 개발 의심을 불식시킬 과제도 부상했다. 미국이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승인하면서 향후 국내 보수층 일각의 자체 핵무장론이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핵보유국)’로 거듭 지칭하고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까지 허용하면서, 향후 북한 비핵화 논의가 핵 군축 개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요구는 결국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인정한 트럼프 대통령 기조에 발맞춘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은 통화에서 “비핵화라는 장기적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면서도 “사실상 북한에 핵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 (비핵화) 조건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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