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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맞춰 재현된 1600년 전 신라 건축…탄성 터진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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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맞춰 재현된 1600년 전 신라 건축…탄성 터진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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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서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열린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에서 학예연구사가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서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열린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에서 학예연구사가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이 나무기둥 끝까지 돌을 다 쌓나요? 그 다음에 흙을 덮고요?”



30일 오전 경북 경주시 황오동 쪽샘유족발굴관 ‘쪽샘 44호분 축조실험’이 한창인 나무기둥 아래에서 한 관람객이 감탄 섞인 물음을 던졌다.



나무기둥은 가장자리에서 덧널과 가까워질수록 높아졌다. 최고 높이는 3.2m란다. 108개 기둥 위에 버팀나무 31개를 비스듬하게 얹어 엮었다. 어떤 곳은 기둥을 비스듬히 깎고, 다른 곳은 버팀나무를 잘라냈다. 위쪽 끝에 나무를 덧대 고정한 곳도 있다. 5세기 신라시대 사람들이 가로 23.1m, 세로 30.8m의 봉분을 어떻게 쌓았을지 추정하며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 실험의 흔적이다.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가 열린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 기둥 위에 ㄱ자로 깎은 버팀나무가 얹어 엮여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가 열린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 기둥 위에 ㄱ자로 깎은 버팀나무가 얹어 엮여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지난해 축조실험을 시작한 이후 현장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설명회가 이날 처음 열렸다.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에 맞춰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현장설명회에서는 발굴조사에 쓰인 도구와 출토된 유물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 800여점 가운데 일부는 뒤쪽 공간에 따로 전시됐다. 덧널 안쪽에는 이 무덤에서 출토된 장신구 등이 재현품으로 대체됐다. 발견된 위치 그대로에 자리한 덕분에 무덤 주인인 키 130㎝에 10살 안팎의 어린 왕녀(공주)가 누운 자리를 가늠케 했다.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서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가 열린 가운데 덧널 안쪽에 출토된 장신구 재현품 등이 전시돼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서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가 열린 가운데 덧널 안쪽에 출토된 장신구 재현품 등이 전시돼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비단벌레 날개로 만든 말다래(말 탄 이의 다리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아래 늘어뜨리는 판)였다. 해설을 맡은 정인태(46) 학예연구사가 화려한 말다래 재현품을 가리키며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한 신라 금관 모형을 만든 김진배 장인이 만든 것”이라고 설명하자 관람객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서 열린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에 출토 유물이 전시돼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서 열린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에 출토 유물이 전시돼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경주여행을 왔다가 현장설명회에 참가한 서준(64·경북 봉화)씨는 “그동안 고분을 많이 봐도 겉모습만 보면서 막연하게 유적이라고 생각만 했는데, 직접 안쪽 모습과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어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며 “아펙 기간에만 진행되는 거라 더 의미가 큰 것 같다. 경주를 찾는 많은 분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체 21단계로 이뤄진 축조실험은 현재 8단계를 진행 중이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동안 조사와 연구를 거쳐 규명한 무덤 축조 과정과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이런 실험은 세계 고고학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도다. 일반적으로 고분은 필요한 구역을 정해 조사·정비하고 보존한단다. 무덤 전체를 해체하는 일은 거의 없단 의미다. 일제강점기 때 ‘쪽샘 44호분’이란 이름이 붙은 이 무덤은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을 때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고 한다.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서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열린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에서 학예연구사가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30일 경북 경주시 쪽샘유적발굴관에서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관련 프로그램으로 열린 경주 쪽샘 44호분 축조실험 설명회에서 학예연구사가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정인태 학예연구사는 “주변에 마을이 들어서고 농사를 지으면서 봉분의 형태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며 “이런 무덤의 구조나 형태는 현재까지 경주에서 딱 5기만 확인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위치에 있어 발굴 조사가 꼭 필요했다. 결국 무덤 전체를 해체해 조사를 했고, 덕분에 이런 축조실험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행사를 통해 1600년 전 신라 문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고학의 수준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중 덧널을 완성한 뒤 주변에 돌을 쌓는 1차 축조실험은 내년 상반기 중 마무리된다. 이후 흙을 완전히 덮어 봉분을 완성하는 후속 실험은 검토 중이란다.



현장설명회는 다음달 1일까지 사흘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30분마다 열린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운영하지 않는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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