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싱가포르 공보부 누리집 갈무리 |
나라 안팎의 기대를 모아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깜짝 만남’이 사실상 무산됐다.
29일 경북 경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은 회담 전 머리발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님이 (트럼프) 대통령님의 진정한 내심의 뜻을 잘 수용하지 못하고 이해 못 한 상태여서 (회담이) 불발됐다”고 말했다. 최근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수차례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대통령이 먼저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회담에서 김 위원장과의 회담이 무산된 데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나는 김정은을 매우 잘 안다. 우리는 매우 잘 지낸다”며 “우리는 정말 시간을 맞추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될 수 있다는 신호는 이날 새벽 북한 매체로부터 전해졌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미사일총국이 “28일 서해 해상에서 해상 대 지상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전한 뒤 “함상 발사용으로 개량된 순항미사일”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듭된 공개 구애에, 김 위원장이 전날 미사일 발사로 응수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발사 현장에 없었지만,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만나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애에 대한 거부로 읽힐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일본 도쿄에서 김해로 오는 전용기 안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질문에 “그(김정은)는 수십년째 미사일을 쏘아왔다”며 “난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그는 김 위원장과 만나느냐는 추가 질문에 “잘 모르겠다. 실무진들이 추진하고 있고, 나도 만나길 원하지만 지금은 중국 문제에 집중하고 싶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과 ‘깜짝 만남’이 무산됐다고 못 박지는 않았으나 기대를 크게 낮춘 분위기였다.
북-미 정상회담이 사실상 불발된 가운데,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다시 당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께서 가진 큰 역량으로 전세계, 그리고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어주시면 제가 여건을 조정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이것(만남 불발)도 하나의 씨앗이 돼 한반도에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남 불발이 ‘끝’이 아니라 북한 문제에 계속 관여해달라는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여러분(남북)이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방한 기간 북-미 회담은 무산됐지만, 앞으로도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정전 상태를 “머리 위에 드리운 지속적인 구름”에 비유하고는 “한국 정부 및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반도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난제를 한국과 함께 풀어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북한의 미사일총국이 “28일 조선 서해 해상에서 해상 대 지상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29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이제훈 선임기자,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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