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 예방이 해답] 〈上〉 싱가포르-캐나다의 예방 정책
치료보다 ‘예방 시스템 강화’ 초점… 개인 일탈 아닌 사회 이슈로 여겨
캐나다, ‘자가 출입금지’ 제도 운영… AI-CCTV로 얼굴 인식해 입장 막아
싱가포르는 고액 입장료 정책 도입… 심리-경제적 장벽으로 문턱 높여
치료보다 ‘예방 시스템 강화’ 초점… 개인 일탈 아닌 사회 이슈로 여겨
캐나다, ‘자가 출입금지’ 제도 운영… AI-CCTV로 얼굴 인식해 입장 막아
싱가포르는 고액 입장료 정책 도입… 심리-경제적 장벽으로 문턱 높여
싱가포르의 대표 카지노인 리조트월드센토사 카지노 입구. 아래쪽 사진은 싱가포르의 대표 호텔이자 카지노가 있는 마리나베이샌즈의 야경. 동아일보DB |
중장비 기사인 김성준(가명) 씨는 아내와 이혼한 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친구와 함께 카지노를 찾았다가 도박의 늪에 빠졌다. 호기심에 한두 번 가다 보니 어느새 20년 동안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주변 사람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잦아졌고, 사회생활조차 어려워질 만큼 삶이 피폐해졌다.
김 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같은 처지를 겪은 현재의 아내 덕분이었다. 먼저 도박 중독에서 벗어난 아내의 헌신과 강원랜드 마음채움센터의 체계적인 상담 지원이 전환점이 됐다. 그는 아내와 함께 카지노 출입 영구정지를 신청하고 전문가 상담과 단도박(斷賭博)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며 서서히 도박과 거리를 뒀다. “도박에 빠졌을 때는 완전히 거지 같은 생활이었어요. 단도박의 첫 번째 비결은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 두기입니다.” 김 씨의 말은 도박 중독이 얼마나 강력하고 끊기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도박 중독은 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끊기 어려운 ‘병적 중독’이다. 전문가들은 “도박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 한번 빠지면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중독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는 해외 주요국들도 도박 중독자의 치료뿐 아니라 예방 시스템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추세다. 동아일보는 해외의 도박 중독 예방 정책과 사례를 살펴보고, 국내 예방 대책의 현주소를 짚는 3회 시리즈를 주 1회씩 연재한다.
● 캐나다, AI로 도박 중독 차단
최근 국내 도박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사행산업 총매출은 25조3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3.5% 증가했다. 합법 산업 외에도 불법 온라인 도박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중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와 달리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온타리오 문제도박위원회(OPGRC)’를 중심으로 도박 중독 예방과 치유 체계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위원회는 카지노 수익의 일정 비율을 법적으로 의무 배정받아 중독 연구, 상담센터 운영, 예방 캠페인 등에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는 ‘자가 출입금지(Self-Exclusion Program)’다. 도박 문제 가능성이 있는 이용자가 스스로 출입금지를 신청하면, 인공지능(AI)과 폐쇄회로(CC)TV가 출입 시도를 즉시 인식해 차단한다. 제도적 기반과 기술 장치가 결합된 형태로, 도박 이용자가 스스로 중독 예방 과정에 참여하도록 설계된 자율 규제 시스템이다.
온타리오주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도를 통해 매년 수천 건의 출입 시도가 적발되고 차단된다. 강원랜드 카지노가 2012년 도입한 ‘자기통제제도’, 2017년 시행된 ‘영구선택제도’와 유사하지만, 캐나다는 이보다 10여 년 앞서 2000년대 초부터 시행해 왔다. 단순한 규제가 아닌 참여형 예방 정책으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캐나다는 또 ‘플레이 스마트(Play Smart)’ 프로그램을 통해 이용자 스스로 자신의 위험 수준을 진단하도록 돕는다. 오프라인 카지노 단말기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자가진단 퀴즈를 제공하고, 결과에 따라 맞춤형 피드백과 상담 안내를 자동으로 연동한다.
특히 온·오프라인 시스템이 완전히 통합돼 있어, 사용자가 오프라인 카지노에서 경고 메시지를 받으면 동일한 정보가 온라인 계정에도 즉시 반영된다. 즉, 한 사람의 이용자를 중심으로 통합 리스크 관리 체계가 작동하는 셈이다. 단순 경고를 넘어 고위험군을 전문 치료와 상담으로 연계하는 선순환 시스템이 구축됐다.
● 싱가포르, 하루 10만 원 입장료로 문턱 높여
싱가포르는 아시아 국가 중 도박 중독 예방 정책이 가장 강력한 나라로 꼽힌다. 핵심은 고액의 카지노 입장료 제도다. 현지인의 입장료는 24시간 기준 100싱가포르달러(약 10만 원), 연간 이용권은 2000싱가포르달러(약 200만 원)로, 강원랜드 입장세(9000원)의 10배 이상이다.
정부는 2010년 마리나베이샌즈와 리조트월드 센토사 개장과 함께 입장료 제도를 도입했다. 개인의 자율에만 맡기지 않고 경제적 부담을 제도적으로 부과해 도박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든 것이다. 카지노 이용 전 단계에서 심리적·경제적 장벽을 높여 중독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를 노렸다.
싱가포르 사회조사청 보고서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현지인의 카지노 방문 빈도는 급격히 줄었고, 이용자 중 다수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전환됐다. 중독 위험은 감소하고 관광 수익과 세수는 늘어나 ‘규제와 성장의 균형 모델’로 평가받는다.
싱가포르 정부 산하 도박문제위원회는 도박 중독을 개인의 책임이 아닌 국가적 공중보건 문제로 규정한다. 단순 규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에도 힘을 쏟는다.
TV·라디오·온라인 플랫폼뿐 아니라 인기 드라마와 스포츠 중계에도 중독 예방 메시지를 노출하고, 학교에서는 청소년 대상 예방 교육을 하고, 가정에서는 부모 대상 워크숍을 통해 가정 내 지도 역량을 높인다. 청소년에게는 도박이 개인과 가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사례 중심으로 전달하고, 부모에게는 자녀와 함께 하는 예방 대화법을 교육한다.
싱가포르의 접근법은 “도박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막아야 할 공중보건 이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강력한 규제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전 국민적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사회 전체가 예방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입장료 제도는 단순한 금전적 제재가 아니라 ‘국가가 도박 중독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라며 “정책과 교육, 홍보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개인·가정·사회가 함께 중독을 차단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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