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법 13년만 재심서 “검찰 조작사건” 무죄
부녀에 유리했던 증거는 감추고, 사건 동기 조작
피해자들 “더는 강압수사 안돼, 진범 수사해야“
부녀에 유리했던 증거는 감추고, 사건 동기 조작
피해자들 “더는 강압수사 안돼, 진범 수사해야“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피고인 부녀가 사건 발생 1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아내에게 건네 아내와 이웃을 살해한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남편과 그 딸이 재심을 통해 13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당시 검찰이 한글을 거의 읽지 못하거나 경계선 지능장애가 있는 부녀를 상대로 ‘유도신문’ 등 강압수사를 했다고 판단했다.
광주고법 형사2부(이의영 부장판사)는 살인 및 존속살해,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던 백모씨(75)와 딸(41·징역 20년)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죄의 핵심 증거가 됐던 검사와 검찰 수사관의 신문조서가 ‘유도신문’ 등 강압적으로 작성됐다고 판단,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백씨는 초등학교 2학년 학력이 전부로, 자신의 이름 등 쉬운 한글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백씨에게 ‘조서 열람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서에는 백씨가 조서를 열람했다는 서명이 남아있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백씨를 포승줄에 묶어 최대 30시간 넘게 조사를 벌인 사실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딸이 검찰에서 한 진술 역시 ‘유도신문’에 따른 결과로 판단했다. 백씨의 딸은 경계성 지능장애가 있지만 검찰은 신뢰관계인의 동석 없이 그를 조사하면서 반복적으로 유도신문을 해 자백한 것처럼 꾸몄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살인 동기로 제시한 ‘부녀의 부적절한 관계’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검사는 재심 재판에 출석해 “경찰로부터 피고인들의 부적절한 소문을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 수사관은 제보한 사실이 없다고 반대되는 진술을 했다.
검찰은 백씨 부녀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심증거도 감췄다. 백씨가 막걸리를 구입하러 간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할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하고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사실도 인정됐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검찰이 백씨 부녀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증거를 조작한 사건인 셈이다.
백씨 부녀는 2009년 7월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막걸리에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타 아내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막걸리를 나눠 마신 아내와 마을주민 등 2명이 숨졌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2011년 항소심에서 유죄로 인정돼 백씨는 무기징역, 딸은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이날 재심 결과를 들은 백씨의 딸은 “검사들에게 ‘이렇게 수사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법정에 나온 백씨의 아들은 “더이상 강압 수사는 없어야 한다. 진범을 반드시 잡아서 명예회복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은 수사와 공소 유지 모든 과정에 걸친 ‘공권력 남용의 총합’”이라며 “패륜 치정이라는 끔찍한 범행 동기를 만들어 꾸몄고, 무죄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인하고도 은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적에 눈이 먼 공권력이 약자의 인권을 외면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재심의 무죄 판결에 대해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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