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양(17)은 X(엑스·옛 트위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와 관련된 정보를 찾다가 '대리입금'으로 아이돌 굿즈를 살 수 있는 금액을 빌려주겠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포토카드를 살 용돈이 바닥나 고민하던 A양은 "미성년자도 대출 가능하다"는 유혹에 넘어가 10만원을 빌렸고 결국 지각비를 포함해 빌린 돈의 두 배인 20만원을 갚아야 했다.
A양은 "큰돈을 빌리는 게 아니어서 쉽게 갚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친구들 중에도 이용 경험이 있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27일 매일경제가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리입금' 광고를 검색하자 순식간에 수십 개의 관련 게시글을 찾을 수 있었다. 게시물들은 학생·무직자·신용불량자도 대출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일부 게시글은 인기 아이돌 이름을 해시태그나 문구에 포함했다.
대리입금이란 현금이 부족하고 금융지식이 없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주로 10만원 내외의 소액을 대신 입금해주는 고금리 불법 대출이다. 돈을 송금한 뒤 원금의 20~30%에 달하는 고액의 이자를 '수고비' 명목으로 요구한다. 상환이 늦어지면 시간당 1000원에서 최대 1만원까지 '지각비'가 붙는다. 계산해보면 법정 최고이자율인 연 20%를 훨씬 초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리입금업자들은 이자를 갚지 못하면 돈을 빌려줄 때 미리 건네받은 개인정보나 가족정보 등을 이용해 '지인이나 가족, 학교에 돈을 못 갚고 있다고 알리겠다'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협박한다. 청소년은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리거나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심지어 다른 대리입금업체를 찾다가 점점 더 큰 빚을 지기도 한다는 것이 경찰 측 설명이다.
실제로 성평등가족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4년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소액대출서비스(대리입금)를 이용한 중·고등학생은 평균 3.1%로 집계됐다. 대리입금을 10회 이상 이용한 비율은 중학생 17.4%, 고등학생 14.9%에 달했다. 이용 금액은 5만원 미만이 65.8%로 가장 많았지만, 10만원 이상도 17.3%에 달했다.
청소년이 대리입금을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돌 콘서트 티켓, 게임 아이템 구매 등의 지출 욕구다. 사행성 게임 등을 이용하면서 대리입금에 발을 들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성평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도박성 게임을 한 청소년 중 14.2%가 대리입금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대리입금 평균 이용 횟수는 17회, 1회 평균 금액 10만원 이상은 25.9%였다. 현재 갚아야 할 금액이 10만원 이상인 경우도 18.5%에 이른다.
최근에는 큰돈을 벌게 해준다며 청소년을 유혹하는 사기 계정도 등장했다. SNS에 "5만원만 주면 30만원으로 돌려드립니다" "7만원으로 130만원 벌었습니다" 같은 글을 올린 뒤 돈만 받고 잠적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도 '불법 대리입금' 차단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청소년은 금융 지식이 부족하고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 탓에 범죄 표적이 되고 있고, 범죄자들이 이를 악용해 대담하게 활동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시는 이날부터 40일 동안 서울시교육청 등 유관 기관과 함께 수사 및 예방 홍보 활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SNS상에서 반복적으로 대리입금을 광고하는 계정을 집중 추적하고 물품구매 대행으로 위장한 대리입금도 수사한다. 특히 서울시는 청소년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해 신고 부담을 최소화하고, 2차 피해 발생 방지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김현중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국장은 "청소년을 상대로 한 불법 대리입금은 단순한 돈거래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행위"라며 "청소년의 학업과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피해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이수민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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