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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 페인, 페인”…트래비스 스콧이 고양시에 세운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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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 페인, 페인”…트래비스 스콧이 고양시에 세운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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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이 25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키르쿠스 막시무스 인 코리아’ 공연을 펼치고 있다. ⓒKhan Jaehun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미국의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이 25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키르쿠스 막시무스 인 코리아’ 공연을 펼치고 있다. ⓒKhan Jaehun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25일 저녁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은 ‘페인’(Fe!n)의 무한 루프(반복)에 빠졌다. 한국을 처음 찾은 미국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의 ‘키르쿠스 막시무스 인 코리아’ 공연 현장은 거대한 환각 체험장이었다. 화려한 레이저와 불꽃, 천둥 소리와 함께 제트(Z)세대 4만8천명이 동시에 솟구쳤다. 스콧은 손짓 한번으로 운동장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는 단 한번의 내한으로도 자신의 위상을 증명했다. 카니예 웨스트와 드레이크의 계보를 잇는 차세대 힙합 슈퍼스타답게, 스콧은 사운드와 비주얼을 통합한 공연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했다. 공연 전부터 “‘유토피아’(2023년 4집 앨범)가 한국에 온다”는 말이 떠돌았다.



데뷔 초부터 그는 랩과 록, 전자음악을 융합해 독자적 사운드를 구축해왔다. 2018년 발표한 ‘애스트로월드’는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하고 그래미 후보에 오르며 현대 힙합의 지형을 바꿨다. 이후 싱글 ‘하이스트 인 더 룸’ ‘프랜차이즈’ ‘4X4’ 등으로 빌보드 ‘핫 100’ 정상에 올랐다.



미국의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이 25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키르쿠스 막시무스 인 코리아’ 공연을 펼치고 있다. ⓒKhan Jaehun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미국의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이 25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키르쿠스 막시무스 인 코리아’ 공연을 펼치고 있다. ⓒKhan Jaehun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공연은 앨범 ‘유토피아’의 첫 트랙 ‘하이에나’로 시작됐다. 거대한 엘이디(LED) 스크린 속 붉은 행성이 폭발하고, 지축을 울리는 저음이 운동장을 흔들자 관객은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월드투어 중 공연장 인근 지진계가 진동을 감지했다는 루머가 사실인 듯 보였다. 심장을 떨게 하는 사운드와 관객의 발구름이 운동장을 뒤흔들었다. 이어지는 곡들이 숨돌릴 틈도 없이 쏟아졌다. 사이키델릭한 정교한 사운드 속에서 트랩과 인더스트리얼, 일렉트로닉이 뒤섞였다. 그는 단순한 래퍼가 아니라 사운드의 설계자였다. 관객은 이 젊지만 노련한 설계자의 음악에 맞춰 무아지경의 모싱(서로 몸을 부딪히는 관객 퍼포먼스)에 빠졌다.



공연의 정점은 단연 ‘페인’이었다. 무엇인가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페인’은 명성과 쾌락, 욕망의 중독을 상징한다. 무대가 붉게 물들자 베이스가 굉음을 내며 바닥을 울렸다. “페인! 페인! 페인!”이 반복되자 스탠딩 관객석 중앙이 갈라지며 거대한 모시 피트(모싱을 하는 공간)가 만들어졌고, 수천명이 동시에 부딪히고 밀쳐내기 시작했다. 스콧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코리아!”를 외쳤고, 조명이 폭발하듯 터지며 몸부림의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혼돈과 해방, 욕망과 광기의 경계가 하나로 뒤섞였다. 이날 ‘페인’의 후렴구는 여섯번이나 반복됐다. 에스엔에스(SNS)에는 “페인 6트”라는 말이 실시간으로 퍼졌다.



미국의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이 25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키르쿠스 막시무스 인 코리아’ 공연을 펼치고 있다. ⓒKhan Jaehun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미국의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이 25일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키르쿠스 막시무스 인 코리아’ 공연을 펼치고 있다. ⓒKhan Jaehun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제공


마지막 곡 ‘텔레키네시스’가 끝나자 스콧은 “아이 러브 유 코리아!”를 외치며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관객석으로 내려갔다. 수많은 손이 그를 향해 뻗었고, 그는 그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웃었다.



이날 모시 피트 안에서 이뤄진 젊은이들의 몸짓은 폭력적이면서도 자유로웠고, 파괴적이면서도 연대적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스콧이 만들어낸 ‘유토피아’의 실체였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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