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산재 사망 8주기 다음날인 지난해 5월29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열아홉살 하청 노동자 김씨의 생일기억식이 열려 조성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이 생일케이크에 초를 꽂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서울지하철에서 근무하다 혈액암(다발골수종)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서울교통공사 노동자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 교통공사에서 차량·기계 분야에서 일하다 혈액암으로 사망한 사례는 이번이 세번째다
20일 서울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12년째 혈액암 투병을 하던 교통공사 노동자 임아무개(56)씨가 지난 18일 저녁 8시께 숨졌다. 임씨는 1995년 교통공사에 입사해 설비직으로 일하며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다. 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이날 “또 한 분 동료의 산재 사망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임씨는 입사 초기인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설비직으로 일하며 공기조화설비·위생배수설비 유지보수, 도색·세척·주유 등 각종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을 맡았다. 당시 작업장은 벤젠이 포함된 페인트와 신나 등 유기용제가 상시 사용되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임씨는 2006년 이후에는 승무원직으로 전환돼 3조2교대, 4조2교대 근무를 이어왔다.
2021년 근로복지공단은 임씨의 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당시 공단 판정서에는 “설비 업무 중 도장 작업이 이뤄진 공간은 주로 공조기·변전실·정화조, 배수 펌프실·터널 환기실 등 밀폐 공간이었으며, 벤젠을 포함한 유기용제에 대한 노출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또 적절한 보호구 착용뿐만 아니라 2000년대 초반까지 벤젠 등 유기용제 관리 수준이 미흡했다”고 명시돼 있다.
교통공사 내에서 확인된 차량·기계직 혈액암 발병자는 임씨를 포함해 13명에 이른다. 지난해 한겨레가 서울지하철 정비노동자 7명의 혈액암 집단 발병 사실을 보도한 이후 차량직군 재직자, 퇴직자 등 4438명을 대상으로 혈액암 발병 조사를 벌인 결과, 차량 분야 11명, 기계 분야 2명 등 총 13명이 확인됐다.
이에 교통공사는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의사·교수·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을 통해 ‘혈액암 관련 현장조사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혈액암 예방·감시 시스템 구축, 세척장비·환기시설 교체 및 노후 설비 개선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권고가 나왔다. 이후 교통공사는 지난 8월 ‘혈액암 보건환경 종합관리계획안’을 내놓고,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을 위한 의학적 관리체계 구축과 설비 교체 등에 약 208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산 확보엔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예산 부담 방안을 놓고 공사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 서울시는 ‘공사의 남는 출자금으로 예산을 충당하는 편이 좋겠다’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또 내년부터 3년에 걸쳐 각각 50억, 62억, 96억원 투입안을 내놨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의 혈액암 예방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공감한다”며 “2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재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3년 동안 나눠 투자하는 것으로 공사와 합의를 마쳤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내년 본예산 편성 시점이 지나 공사의 남는 출자금을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는 출자금으로는 혈액암이 발병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안정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서울시가 순차적으로 예산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노조 관계자는 “출자금은 사용 목적이 따로 있고, 출자금이 바닥나는 해에는 사업이 중단될 수 있어 사업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가 작업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시와 공사가 작업장 개선 예산을 하루빨리 확보해 초기부터 환경 개선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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