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 사진=안성후 기자 |
[인천=스포츠투데이 신서영 기자] 한국 배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배구 여제' 김연경이 선수 생활에 공식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김연경은 18일 오후 4시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개막전을 통해 은퇴식을 치렀다.
김연경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평정한 배구 전설이다. 2005-2006시즌 V리그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그는 데뷔 시즌부터 남달랐다. 신인상·정규리그 MVP·챔피언 결정전 MVP를 동시에 수상했고, 공격상·득점상·서브상까지 거머쥐며 데뷔 첫 해 6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국내 리그를 평정한 김연경은 해외 무대 도전에 나섰다. 일본, 튀르키예, 중국 등 국외 리그에서 활약을 펼치며 세계적인 선수로 우뚝 올라섰다. 이후 2020-2021시즌엔 코로나19로 여파로 인해 11년 만에 V리그로 복귀했다.
오랜 기간 해외에서 활약했던 김연경은 V리그에서 단 8시즌만 뛰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국내에서 뛴 모든 시즌(2005-2006, 2006-2007, 2007-2008, 2008-2009, 2020-2021, 2022-2023, 2023-2024, 2024-2025)에 흥국생명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놨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있는 동안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 4회, 통합 우승 3회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시즌 막판 라스트댄스를 선언한 김연경은 흥국생명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 압도적 선두를 달리며 정규리그를 27승 9패(승점 81)로 마쳤다. 정규리그 우승의 일등 공신은 김연경이었다. 김연경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 총 585점으로 국내 득점 1위(전체 7위)에 올랐고, 공격 종합 2위(공격성공률 46.03%), 리시브 2위(41.22%) 등을 기록하며 공수 전반에 걸친 활약을 펼쳤다.
김연경의 활약은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챔피언결정전 5경기에서 무려 133점을 올리며 역대 V리그 여자부 최초로 포스트시즌 통산 1000점(총 1045점)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작성했다. 동시에 개인 통산 4번째 챔피언결정전 MVP이자 리그 역대 2호 만장일치 MVP를 거머쥐었다. 시즌 후엔 통산 7번째 정규리그 MVP까지 차지하며 20년 선수 생활에 완벽한 수미상관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국가대표로서 활약도 빛났다. 김연경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세 차례 출전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고, 최다 득점 1위(207점)로 올림픽 신기록을 달성하며 MVP를 수상했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다시 한 번 4강 신화를 재현했다.
이날 경기 종료 후 공식적인 은퇴식이 진행됐다. 먼저 전광판을 통해 김연경의 데뷔 시절부터 현재까지 모습을 담은 헌정 영상이 상영됐다. 선물 전달식 후엔 함께 코트를 누빈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축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송출됐다.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김연경의 영구 결번식이었다. 김연경의 등번호 10번이 적힌 대형 유니폼이 경기장 상단에 걸렸고, 꽃가루가 터졌다.
김연경의 10번은 흥국생명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또 김연경은 시몬(OK저축은행), 김사니(IBK기업은행), 이효희(한국도로공사), 문성민(현대캐피탈)에 이어 V리그 역대 5번째 영구 결번 선수가 됐다.
김연경에게 10번은 의미 있는 번호다. 한일전산여고 시절부터 10번을 달았고, 흥국생명은 물론 일본 JT 마블러스, 터키 페네르바체와 엑자시바시, 중국 상하이 등 해외 무대에서 활약할 대도 10번을 유지했다. 대표팀에서도 김연경의 유니폼에는 10번이 달렸다.
은퇴식 후 김연경은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김연경은 '과거'의 소회보단 앞으로 배구계가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아래는 김연경과 일문일답이다.
Q. 몇 번째 은퇴식인가
-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늘은 진짜 마지막 은퇴식이다. 흥국생명에서 공식 경기 후 열린 이벤트라 감회가 새롭다. 특히 영구 결번을 해주셔서 뜻깊었다.
Q. 혹시 울었나
- 안 울었다. 울컥은 했다. 사진 기자 분들이 앞에서 싱거워 하시는 것 같았다. 울어야 했는데 웃었다.
Q. 본인이 없는 흥국생명의 경기 어떻게 봤나
- 스카이 박스 위에서 봤다. 경기 초반 너무 잘해줬다. 생각했던 스타팅 멤버가 아니라 다르게 나왔다 완전히 팀이 바뀌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들어간 선수들이 자기 역할들 잘해줬다. 올 시즌 기대가 된다. 시즌은 길다. 선수들이 끝까지 도우면서 잘해줬으면 좋겠다.
Q. 오늘 경기를 감독으로서 본다면
- 1세트까지 감독의 시선으로 봤다. '저기 올려', '저기 때려' 생각했다. 가짜 감독이기 하지만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2세트부턴 어드바이저로서 편안한 마음으로 봤다.
Q. 프로그램을 팬뿐만 아니라 일반 시청자도 많이 사랑한다
- 사실 배구라는 게 생소한 종목이라고 많이들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예능을 시작할 때 고민이 컸다. 그래도 진짜 팀을 꾸려서 한다는 게 메리트가 있어 시작했는데 그런 진심이 방송에서 보여서 사랑을 받고 있지 않나 싶다. 방송에 나와서 배구에 대한 설명을 하니 많은 분들이 잘 몰랐던 배구의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배구 선수였고, 현재 배구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 기분 좋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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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상 복귀 소감
- 은퇴하고 나서 KYK인비테이셔널, 원더독스 촬영, 국제배구연맹(FIVB) 세미나까지 쉬지 않고 스케줄을 했다. 그동안 저를 내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이번에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런 시간들에 대해 조금 생각들을 많이 했다. 이제 시즌도 시작했으니까 어드바이저 역할도 해야 한다.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해보려고 한다
Q. 방송 촬영 많은 짤이 도는데 섭섭한 건 없나
- 1화 방영 전 처음 티저가 나갔을 때 작정한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주위에도 물어봤는데 '그냥 넌데'라 하더라. 그래도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 보내주셨다. 회피형 사람들이 이걸 봐야한다고 일침 놓는 것도 봤다. 진심을 담아서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까 그런 모습들이 나온 건데 좋게 봐주셨다. 앞으로 더 재밌을 예정이다. 대본을 짜라고 해도 이렇게 짤 순 없을 수준이다.
Q. 시청률이 엄청난데 다음 시즌 계획은
- 많이 힘들었어 가지고. 촬영하며 두 달 반 동안 합숙했고 매일같이 훈련했다. 스포츠라는 게 같이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합숙하는 기간에도 미팅하고 훈련하고 이해시키고 이런 과정들을 다시 하라고 하면 괜찮을까 싶다. 신중하게 생각해보겠다.
Q. 김연경 감독의 일침 시리즈가 유명하다. 선수 시절 마음에 담아뒀던 건가, 감독이 돼서 의식적으로 하는 건가
- 선수 때도 조금은 하긴 했다. 선수 때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다. 선수들이 조금 더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직설적인 얘기들을 많이 했다. 선수들이 받아들이면서 잘 따라와줬다.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저도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더라. 방송이긴 하지만 제가 감독이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그림도 그려졌다.
Q. 원더독스 훈련 시킬 때 힘들었던 점은
- 초반 틀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다. 기간 자체가 짧았다. 그 시간 안에 선수나 저나 빠르게 성장해야 했다. 또 경기도 바로 진행됐다.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내야 하는 부분이 어려웠다. 원하는 걸 만들어 나가는 게 힘들었다.
Q. FIVB 세미나는 어땠는지
- 그렇게 힘든 세미나인 줄은 몰랐다.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영어로 계속 진행한다. 그래도 그 안에서 내가 뭐에 관심이 있고, 뭘 하고 싶은지 돌아보면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프리젠테이션, 인터뷰, 이력서까지 디테일하게 별 걸 다 배웠다.
Q. KYK 재단 일은 어떤가
- 어려운 일이다. 정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정말 큰 열정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여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재단을 연 지 1년 정도 지났다. 계획도 잡혀가고 있어서 최대한 시간과 열정을 갖고 지원해보려고 한다.
Q. 선수로서 배구계에 많은 공헌을 했는데 앞으로 그리는 배구가 있다면
- 국내보다는 국가 대표팀이 국제 무대에서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 그럼 더 많은 팬들이 다시 배구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국제 무대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가 배구계의 숙제다.
Q. 은퇴 후 세대 교체가 안 된다는 시선도 있는데
- 결국엔 계획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는 성적이 안 나오더라도 장기적 플랜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지속해서 지지해줄 거다. 지금 느낌으론 시스템이 매년 바뀌는 것 같다. 이런 장기성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팬들을 더 화나게 한다. 몇 년이 돼도 상관 없으니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Q.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플랜이 있어야 팬들도 '선수들이 중요하고 목표를 갖고 열심히 나아가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런 부분들이 잘 갖춰진다면 더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Q. 해외 무대에 도전했던 원더독스 선수들이 많은데
-도전에 대한 건 긍정적이다. 한국 선수들 연봉이 해외 선수들보다 높다. 지금 해외 무대는 기회를 받지 못하는 선수 외에는 도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 V리그 수준을 높이자고 항상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좋은 외국인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 해외에서 자원을 데려와서 우리 리그를 활성화 시키고 수준을 높이면 국제 무대에서 기량을 갖출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진다.
Q. 감독을 하면서 2군 리그 생각도 많아질 거 같은데
- 많은 분들이 선수가 없는데 어떻게 팀을 만드냐고 한다. 그런데 오늘 경기만 봐도 밖에서 기다리는 선수가 많다. 실업 선수들, 은퇴 선수들 밖에 있는 선수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건 말이 안 된다. 차라리 1군 엔트리를 줄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2군에서 훈련하고 취업을 하면 되기 때문에 자원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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