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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국 시야에서 한국이 사라졌다

조선비즈 베이징=이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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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국 시야에서 한국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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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학교에 다닐 시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중국인 친구들의 선망을 받았다. 필기구와 옷차림, 머리 스타일, 도시락 메뉴까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거리 어디에서나 한국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눈에 들어왔고, 한국산은 ‘고급’의 대명사였다. 한류 스타의 인기도 어마어마했기에,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베이징에서 한국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여행지로서의 관심은 여전하지만, 자동차와 전자제품 모두 자국산 인기가 훨씬 높고, 우리가 압도적 수준을 자랑하던 문화 산업에서 중국은 점차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를 뒤흔든 K팝 소재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인기도 중국에선 이상하리만치 잠잠하다.

떨어진 위상은 관세전쟁 국면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는 하루가 멀다고 미국을 비난하고 압박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다. 중국 상무부는 이달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하기 전, 미국 측에 이를 미리 알렸다고 했다. 최소한의 대응 시간을 준 것이다. 이후에도 중국은 미국과 힘겨루기를 이어갔지만,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며 완화 제스처를 함께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의 301조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한국에 가해진 제재에선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희토류 수출 통제를 사전 통보 받은 미국과 달리, 한화오션에 대한 중국의 제재는 기업 측도, 정부 측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계는 이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며 정부에 단호한 대응과 제재 해제 요청을 촉구하고 있고, 대통령실도 “통상 채널을 가동해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중국의 입장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가동하고 있는 소통 채널이 성과를 내길 바라지만, 그동안의 고위급 인사 교류는 일정 부분 한계를 보여왔다. 그간 지난 8월 말,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대표로 하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중국통’들이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찾았지만, 결국 시진핑 주석과 만남은 불발됐다.

올해 하반기에만 7월에 이학영 국회부의장, 유정복 시도지사협의회장(인천시장), 8월에 특사단, 9월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베이징을 찾았는데, 이들이 접견한 최고 권력자는 서열 3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선 연일 반중(反中) 시위가 열리며 외교 부담을 더하고 있다.


외교가는 고위급 만남이 진척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중국 지도자들의 일정이 생각보다 더 빠듯하다”고 말했지만,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닐지 우려된다. 시 주석은 우리 특사단이 인민대회당에서 자오러지 위원장을 만나던 날, 같은 곳에서 러시아 의회 의장을 만나고 관저로 이동해 캄보디아 국왕 내외를 접견했다. 같은 날 같은 곳에 있었으나 잠깐의 환담도 없었다. 우리 측의 잇따른 방중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서열 2위 리창 총리는 얼마 전 16년 만에 북한을 2박3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중국의 한화오션 제재를 두고 흔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고래는 새우의 고통을 개의치 않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존재감 복원이 시급하다. 이달 말 시 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위해 한국을 국빈 방문한다. 9개월간 공석이던 주중대사 자리도 채워졌다. APEC은 흐려진 우리의 존재감을 되찾을 기회다. 정상 간 만남으로 확실한 동력을 확보하고, 실무 소통을 긴밀히 해 벌어졌던 거리를 다시 좁혀야 한다.

베이징=이은영 특파원(eun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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